신아리랑 ()

고전시가
개념
전통 아리랑이 신민요 형태로 변형되어 불린 아리랑. 민요.
정의
전통 아리랑이 신민요 형태로 변형되어 불린 아리랑. 민요.
개설

한국 민요사에는 1920∼1930년대에 걸쳐 독특한 형태의 노래가 유행하였다. 기존에 불리던 전통적인 민요와 다르다는 측면에서 새롭다고 하여 신민요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대중에게 친숙한 전통 민요를 시대적 상황에 맞게 응용한 새로운 민요풍의 유행가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아리랑에도 일어나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930년에 〈신아리랑〉이라는 곡목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형태의 〈신아리랑〉이 나타나면서 신민요 아리랑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대중적인 유행을 바탕으로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인기를 누렸다.

연원 및 변천

〈신아리랑〉의 기원이 되는 노랫말은 〈어르렁 타령〉(1912년)과 금강산 장안사의 〈아리랑〉 (1918년) 및 영화 〈아리랑〉(1926년) 등에 존재한다. 특히 영화 〈아리랑〉과 〈신아리랑〉을 비교해 보면, 영화 〈아리랑〉의 4절을 〈신아리랑〉에서는 2절로 했고, 노랫말의 경우 ‘십리도’가 ‘십리를’로, ‘이 강산 삼천리’가 ‘삼천리 강산’으로 바뀌었으며, 일부의 글자도 한자로 바뀌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가사들은 이후 〈본조아리랑〉(1959년)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내용

영화 〈아리랑〉(1926년)이 출현한 이래 다양한 형태의 신민요가 대거 등장하였다. 본격적인 노래 명칭으로서의 〈신아리랑〉이 나타난 것은 1930년 6월이다. 『조선민요 아리랑』에는 〈신아리랑〉과 더불어 〈신작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타령〉 등이 채집되었고, 다음 달인 7월에도 가사 내용은 다르지만 〈신아리랑〉이라는 곡명이 나타나고 있다.

신민요로서의 아리랑이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왕수복은 〈신아리랑〉 〈봄맞이 아리랑〉 등을 불렀고, 선우일선의 〈그리운 아리랑〉 〈즐거운 아리랑〉, 장일타홍의 〈아리랑의 꿈〉, 김선영의 〈아리랑 세상〉, 백난아의 〈아리랑 낭낭〉, 김용환의 〈꼴망태 아리랑〉, 이화자의 〈아리랑 삼천리〉, 백년설의 〈아리랑 만주〉, 김봉명의 〈아리랑 술집〉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신민요의 출현으로 한국의 아리랑은 전통 아리랑, 신민요 아리랑,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 등의 변용을 거치며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아리랑〉은 전통 아리랑이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변모되는 전환기에 나타나 가교 역할을 하였다. 대중의 관심이 약해지면서 서서히 소멸되어 갔지만 유성기 음반 속에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아리랑 연구총서』 2(조규익⋅조용호, 학고방, 2014)
『아리랑 원형연구』(조용호, 학고방, 2011)
「아리랑 연구의 현황과 과제」(조용호, 『어문논집』 43, 중앙어문학회, 20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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