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신현리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고분군은 조정산(810m)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구릉의 남쪽사면 해발 130∼150m에 위치한다. 1차 조사결과, 삼국시대 신라고분 27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 고려시대 가마 2기, 미상유구 1기, 토광묘 1기 등 32기의 유구가 조사되었으며,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209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2차 조사지역은 1차 조사지역의 하단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고분 38기, 고려시대 석곽묘 2기, 고려시대 이후로 추정되는 토광묘 3기, 미상유구 1기, 수혈유구 1기 등 4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삼국시대 신라유물과 고려시대 석곽묘에서 조사된 유물을 포함하여 토기류 205점, 자기류 7점, 철기류 105점, 청동류 3점, 구슬 4점 등 331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이 중 삼국시대는 횡구식석실묘 11기, 수혈식석곽묘 50여기가 조사되었다.

내용

횡구식석실묘는 장축의 방향이 북-동으로 등고선 방향과 대개 평행하지만 직교하는 경우도 있다. 벽석의 축조는 최하단에서 2단까지는 세로쌓기를 하고 3단부터는 가로쌓기와 혼용하였으나, 상위로 올라가면서 가로쌓기가 중심이 된다. 벽석은 단면 사다리꼴 형태로 3단부터 조금씩 내경하여 석축을 하였으며, 하위에 비하여 상위의 너비가 반 정도까지 내경하였다. 횡구부의 조성방향은 사면 아래에 해당하는 남쪽 부분에 설치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는 자연 지형적 여건상 위쪽 보다는 사면 아래가 추가장 행위나 묘역 관리에 수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석곽묘의 축조는 지면을 정지하고 묘광을 반지하식으로 굴착한 다음 하단석은 흙으로 충전하면서 쌓고 상단은 성토하면서 벽석을 축조한 후 개석을 횡으로 놓고 그 위에 밀봉한 후 봉토를 덮었다. 조사에서 확인된 매장공간 위쪽에 일정한 높이의 돌을 내밀어 받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구조가 있는 1호 석실분과 2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벽감형태의 출입구 조성방법 등은 신현리 고분군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학술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결과 삼국시대 고분은 횡구식과 수혈식으로 조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조사지역의 동쪽·중앙·서쪽에 조성된 고분군 상호간에 평면형태와 사용된 석재의 종류와 규모를 달리하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거의 일정한 시기에 조성된 단일묘역에서 이런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사례로 보여 조성집단에 따른 묘역의 공간적 분할을 보여준다.

특징

출토된 유물 중 1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2-1호 석실분의 철지은장제 마구류와 2차 발굴조사의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수하식이식은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는 위신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신현리고분군 조성집단의 신라 영역 내 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된 토기류를 보면 전체적으로 신라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상주지역 병성동고분군에서 보이는 재지적 양식으로 생산된 토기가 다수 확인되었다. 그리고 1호, 11호, 21호, 24호에서 출토된 일부 고배류와 장경호류는 의성지역에서 보이는 의성양식토기로 생각된다. 고분의 조영시기는 토기의 형식분류를 통해 볼 때, Ⅰ기는 5세기 후반, Ⅱ기는 6세기 전반, Ⅲ기는 6세기 후반으로 편년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문경신현리고분군의 출토유물과 구조를 분석해 본 결과, 6세기 전반에 신라가 문경지역에 진출한 이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경지역이 당시 삼국의 접경지대였음을 고려할 때, 인근에 위치한 고모산성의 조사 성과와 더불어 상주를 거점으로 하고 문경지역을 거쳐 북쪽 소백산맥의 고갯길인 조령을 넘어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는 신라의 영토 확장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학술적 자료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문경 신현리 고분군』(중원문화재연구원, 2007)
『문화유적 분포지도-문경시-』(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2004)
「신현리고분군」(『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집필자
박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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