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대리리 3호분 ( )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돌무지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돌무지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352번지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금성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하며, 해발 112.2m인 구릉 능선부와 해발 106.5m인 구릉부, 그 사이 계곡부의 3개 구역에 약 45기의 고분이 조영되어 있다. 이 중에서 평지에 가까운 곳에 조성된 3호분은 금성산 고분군 중에서도 계곡부 상단의 평탄면인 해발 94.5m에 입지한다.

내용

3호분의 잔존 분구의 규모는 지름 11~13m, 높이 3m이고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긴 타원형이다. 조사결과 1곽은 장축 방향이 남북향으로 단곽식이고 2곽은 목곽인 부곽이 나란하게 ‘11’자형으로 배치된 주·부곽식 구조이다. 이들의 선후관계는 2곽의 주·부곽이 동시 축조된 후에 2곽의 분구를 파서 1곽을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1곽은 위석목곽묘로 분구의 서쪽에 위치하며 2곽의 분구 상부를 굴착하여 축조하였다. 장축 방향은 북-동이고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1곽의 규모는 길이 3.1m, 너비 1.5m이다. 벽석은 할석과 천석으로 축조하였다. 1곽은 벽석을 축조한 후 목곽을 안치하고 목관과 벽석 사이를 천석으로 뒷채움하였다. 1곽 꺾쇠의 위치를 근거로 목곽의 크기는 길이 3.1m, 너비 1.5m이다. 유구의 중앙부에는 2인의 피장자가 유구의 동쪽과 서쪽으로 나란하게 안치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동쪽에 안치된 피장자는 치아, 다리뼈 흔적 일부와 금제 태환이식, 유리제 경식을 착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서쪽에 안치된 피장자는 다리뼈흔적 일부와 금제 태환이식을 착장한 상태였다. 유물의 경우 토기류는 양 단벽 쪽에, 장신구는 유구 중앙부에 부장하였다.

2곽의 주곽은 반지하식의 적석목곽묘로 주곽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 방향은 북-동이다. 부곽은 주곽 남 장벽의 남쪽에 50㎝ 떨어진 곳에 축조되었다. 주곽은 회갈색 구 지표를 정지한 후, 길이 5.6m, 너비 2.5m, 높이 70㎝ 크기의 장방형 묘광을 굴착하여 바닥에는 냇돌을 깔아 시상을 마련하고 그 위에 목곽을 설치한 후 목곽과 묘광 사이에 다시 천석으로 뒷채움하였다. 유물은 토기류· 금동관· 은제 과대· 삼엽문환두대도· 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 중 금동관은 북 장벽을 따라 눕혀져 있는 소형통형기대와 대부호 사이에서 길게 펼쳐져 출토되었다. 그리고 피장자의 허리 부근에서 은제 과대와 동지금장제의 삼엽문환두대도가 착장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부곽은 길이 5.3m, 너비 2.0m, 깊이 50㎝의 장방형 묘광을 구축하고 그 내부에 두께 10~15㎝ 정도의 각재를 사용해 목곽을 설치하였다. 유물 출토위치는 서 단벽 쪽에는 토기가 다량으로 매납되었고, 중앙에는 농공구와 무기류, 그리고 동 단벽에서는 토기류와 무기류가 부장되었다. 그리고 동 단벽 인근에서 순장으로 보이는 인골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3호분은 위석목곽묘와 목곽을 주부곽으로 하는 2곽이 축조된 후, 추가로 위석목곽묘인 1곽이 추가장된 구조이다. 이 묘제는 경주의 적석목곽분과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상부에 적석이 없는 점, 호석이 돌아가지 않은점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신라 중앙과 밀접한 관계속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2곽 주곽의 피장자가 착장한 금동관· 금동환두대도· 은제과대· 금제이식 등과 순장자의 존재로 볼 때, 이 지역의 상위 지배자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토기는 신라양식을 따르지만, 이른바 의성양식 토기들이 대부분이다. 연대는 탑리고분 1곽과 비슷하거나 조금 늦은 시기로 볼 수 있어 대체로 5세기 중엽 후반으로 편년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의성 대리리2호분』(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12)
『의성 대리리3호분』(경북대학교박물관, 2006)
『문화유적 분포지도-의성군-』(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 2005)
집필자
박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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