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상감‘王’명잔탁은 고려 후기 제작된 ‘왕(王)’자 명문 청자 잔탁이다. 강진에서 생산된 것으로 ‘왕’명 청자는 13세기 후반 도교 의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강진 사당리 7호와 41호 혹은 강진 일대에서 ‘왕’명 청자가 수습되고 있어 생산지는 강진 사당리 일대로 여겨진다.
13세기 후반 왕실의 도교 의례를 위해 강진에서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 강진에서 생산된 명문 잔탁이다. 본래 잔과 한 벌을 이루는 구성이나 잔은 소실되고 잔탁(盞托)만 전하고 있다. 잔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잔받침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잔탁은 꽃이 핀 형상의 전 부분에 흑상감으로 ‘왕(王)’ 명문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왕’명 청자는 주로 잔과 잔탁에 많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일상 기명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도교신인 삼관(三官)의 관(冠)에 ‘왕’자명이 새겨진 예나 고려 왕실에서 도교 관련 제례가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반에 빈번히 행해지는 것으로 보아 13세기 후반 도교 의례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왕’명 잔탁은 도교 의례 중 천관 · 지관 · 수관과 같은 도교상에 차나 술을 올리기 위해 사용했던 그릇으로 여겨진다.
현재 ‘왕’명 청자는 강진 사당리 7호와 41호 혹은 강진 일대에서 수습되고 있어 생산지는 강진 사당리 일대로 추정된다.
연판문으로 장식된 편평한 잔좌(盞坐) 아래로 꽃이 활짝 핀 형상의 6개의 전이 펼쳐져 있으며, 안쪽에는 흑상감으로 ‘왕(王)’명이 새겨져 있다. 전 아래 밖으로 뻗은 통형의 다리가 연결되어 있고 일정 간격으로 세로선을 새겨 넣었으며, 굽 역시 세로선에 맞추어 오려냈다. 굽 일부는 결실되었으나 거의 완전한 형태이다. 태토는 회갈색으로 유약은 전체적으로 고르게 시유되어 회청색을 띠며, 굽 접지면은 유약을 닦아 내고 모래를 받쳐 구워냈다.
현존하는 ‘왕’명 청자의 수량이 극히 일부로 희소성을 띠고 있고, 명문을 통한 용처와 용례의 추정이 가능하다. 또 생산지로 추정되는 강진에서 유사 파편이 수습되었기 때문에 고려 후기 명문 청자의 생산 연대 파악과 고려 후기 왕실 의례용 자기 생산과 수취 체제 연구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높다. 2008년 8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