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육영회 ()

근대사
단체
1919년 11월 부산에서 안희제 등 백산상회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부산 · 경남 지역 유지 40여명이 조직한 장학재단.
정의
1919년 11월 부산에서 안희제 등 백산상회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부산 · 경남 지역 유지 40여명이 조직한 장학재단.
설립목적

안희제(安熙濟: 1885~1943) 등은 1919년 3·1운동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해서는 교육 보급, 인재 양성, 민중 계몽이 급선무임을 깨달았다. 이에 장차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우수한 청년을 선발하여 국내 및 국외에 유학시킬 목적으로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 설립하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기미육영회가 발족한지 6개월 후인 1920년 5월 회원이 43명에 이를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1920년 경제공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1921년 이후에는 육영사업이 원활하게 지속되지 못하였다.

기능과 역할

기미육영회는 회원 부담금으로 국내 및 국외로 유학생을 파견함으로써 장차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매년 10명씩 유학생을 선발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1차 유학생으로 김정설(金鼎卨)·이병호(李炳虎)·이제만(李濟晩)·전진한(錢鎭漢)·문시환(文時煥)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파견하였다. 또한 안호상(安浩相)·이극로(李克魯)를 독일, 신성모(申性模)는 영국으로 파견하였다.

의의와 평가

기미육영회는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남 각지의 유지 40여 명으로 조직되었다. 회원 부담금으로 유학생을 선발하여 일본·독일·영국 등으로 파견하여 장차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 양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東亞日報)』(1920.5.5; 1921.3.30; 1921.4.19)
『내가 몰랐던 독립운동가 12인』(이동언, 선인, 2013)
『독립운동 자금의 젖줄 안희제』(이동언,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0)
『한국기업가사』(조기준, 박영사, 1973)
「백산 안희제 선생 해적이」(김의환,『나라사랑(백산 안희제 선생 특집호)』제19집, 외솔회, 1975)
『朝鮮獨立運動』 第1卷分冊(金正明, 東京: 原書房, 1967)
집필자
이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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