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은 성품이 바르고 덕행을 갖추어 수행자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는 불교 지도자를 가리킨다. 선친우, 선우, 친우, 승우라고도 한다. 이와 반대로, 그릇된 길로 이끄는 사람을 악지식(惡知識)이라고 한다. 선지식으로는 여러 보살들과 비구·비구니·장자·거사·우바이의 사부대중을 비롯하여 바라문·외도와 어린아이나 천신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각각 중생을 인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닦아서 불도에 들어가도록 하므로 모두 한결같이 선지식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도를 구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만들어 주는 모든 존재가 선지식이다.
범어 kalyāṇa-mitra, 팔리어 kalyāṇa-mitta의 번역이며, 가라밀(迦羅蜜) · 가리야낭밀달라(迦里也曩蜜怛羅) 등으로 음역한다. 선지식(善智識) · 선친우(善親友) · 지식(知識) · 선우(善友) · 친우(親友) · 승우(勝友)라고도 한다. 좋은 친구라는 뜻이며, 불도(佛道)에 들어가도록 바르게 이끌어주는 훌륭한 지도자를 일컫는다. 이와 반대로, 그릇된 길[邪道]로 이끄는 사람을 악지식(惡知識)이라고 한다.
선지식은 수행자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보살펴줄 부모가 필요하고, 장님에게는 눈이 필요하듯이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바른 길을 가르쳐주고 이끌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권4 (65)에서,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선지식은 범행(梵行)의 절반[半體]이며, 악지식이나 나쁜 벗이 아닙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선지식은 착한 벗이며 착한 도반이니, 범행의 전체(全體)이다. … 나도 선지식으로 인하여 생사에서 벗어났다.’ ”고 하였다. 즉, 불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선지식에 의존해야함을 강조하였다.
『시가라월육방예경(尸迦羅越六方禮經)』에서는 악지식과 선지식을 구분해야 함을 강조하며 여러 차례 거듭 설명한다. “선지식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겉으로는 원수 같으나 안으로는 두터운 마음이 있는 사람, 둘째는 면전에서는 직언을 하더라도 밖에서는 그의 장점을 말해주는 사람, 셋째는 병들거나 관청에 붙들려가서 두려워 근심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사람, 넷째는 가난한 이에게 모른 척하지 않고 부유해지게 방편을 찾아주는 사람이다.
(중략) 또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싸우려 하면 그것을 말리며, 둘째는 악지식을 따르려하면 그만두도록 일러주고, 셋째는 살아갈 방도를 찾지 않으려하면 권하여 살 길을 찾게 하며, 넷째는 경전에 설해진 길을 좋아하지 않으면 가르쳐서 믿고 기뻐하도록 해준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설한 후에, “잘 가려서 착한 이를 따르고, 악한 이는 멀리 하라. 나도 선지식을 따라서 성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법화경(法華經)』 권4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 제12에서는 극악인으로 알려진 제바달다가 오랜 과거 생에 석가모니부처님의 스승 즉, 선지식이었다고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과거에 그로부터 『법화경』을 듣고 받아 지녀 수행한 인연으로 현세에 성불하게 되었으며, 제바달다는 그러한 인연으로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고 수기(授記)를 한다.
또 『법화경』 권7의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에서는 묘장엄왕의 두 아들이 부왕(父王)의 선지식이 된 내용을 설하며,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선근(善根)을 심어 세세(世世)에 선지식을 만나게 되면, 그 선지식이 불사(佛事)를 지어 보여주고 가르쳐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들어가게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식은 불도를 이루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선지식[善友]이 갖춰야할 요건에 대해서는, 『사분율』 권41에서 일곱 가지를 들고 있다. ①주기 어려운 것을 기꺼이 주며[難與能與], ②하기 어려운 것을 기꺼이 하며[難作能作], ③참기 어려운 것을 기꺼이 참으며[難忍能忍], ④비밀한 일을 서로 말해주고[密事相告], ⑤잘못을 덮고 감춰주며[遞相覆藏], ⑥어려움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으며[遭苦不捨], ⑦가난하고 천하다고 경멸하지 않는[貧賤不輕] 등이다.
또 『화엄경: 육십권본(華嚴經: 六十卷本)』 권36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는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선지식을 말한다. ①보리심(菩提心)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는 선지식, ②선근을 닦아 익히게 하는 선지식, ③모든 바라밀을 완전히 성취하게 하는 선지식, ④일체 법을 분별하여 해설해주는 선지식, ⑤일체 중생을 성숙시켜 편안히 머물게 하는 선지식, ⑥변재(辯才)를 갖추어 물음에 따라 모두 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선지식, ⑦일체의 생사에 집착하지 않도록 해주는 선지식, ⑧일체 겁(劫)에 늘 보살행을 행하며 마음에 싫증이나 게으름이 없도록 하는 선지식, ⑨보현행(普賢行)에 안주하도록 하는 선지식, ⑩일체불지(一切佛智)에 깊이 들어가도록 하는 선지식 등이다.
『화엄경: 팔십권본(華嚴經: 八十卷本)』 권60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에게 법문을 듣고 나서 남방으로 떠나서 차례로 53선지식을 참방하였다고 한다. 선지식으로는 여러 보살들과 비구 · 비구니 · 장자 · 거사 · 우바이의 사부대중을 비롯하여 바라문 · 외도와 어린아이나 천신들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각각 중생을 인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닦아서 불도(佛道)에 들어가도록 하므로, 모두 한결같이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는 『마하지관』 등에서 선지식을 역할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외호(外護) 선지식으로서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며 바깥에서 보살펴주는 사람이고, 둘째는 동행(同行) 선지식으로서 함께 수행하며 서로 격려해주는 도반이며, 셋째는 교수(敎授) 선지식으로서 도(道)와 도가 아닌 것을 잘 분별하며 바른 도리를 설해주는 이를 말한다. 이것은 반드시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만 선지식이 아니라, 수행자가 도를 구할 수 있도록 인연을 만들어주는 모든 존재가 선지식임을 보여주는 해석이다.
우리나라 불교사에도 많은 선지식이 있었다.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은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를 ‘보살’과 ‘성사(聖師)’라고 일컬으며, 인도의 용수나 세친에 비견할만한 선지식이라고 찬탄하였다.
그러한 원효에게도 큰 산과 같은 스승이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가 낭지스님께 보낸 게송에서 ‘작은 먼지를 불어 영축산 꼭대기에 얹히고, 작은 물방울 날려 용연(龍淵)에 채운다.’고 하였다. 즉 스승은 영축산이나 용연과 같고, 자신은 한 티끌의 먼지와 한 방울 물에 지나지 않다고 노래하였다.
이처럼 수행자에게 선지식은 큰 산이며 큰 바다와 같이 영원한 의지처와 같은 존재이다. 수행자는 선지식으로 인하여 아상(我相)과 아만(我慢)을 일으키지 않고 항상 겸허할 수 있으며, 선지식을 말미암아야만 삿된 길에 떨어지지 않고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선지식은 수행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며, 부처님 역시 선지식으로 인하여 생사를 벗어났음을 명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