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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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대한민국의 8·15광복 이후 민주민족청년동맹, 인민혁명당, 경락연구회, 인민혁명당 재건위 등에서 활동한 민주화, 통일 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3년 3월 28일
사망 연도
1975년 4월 9일
출생지
경상남도 창녕
관련 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내용 요약

서도원은 민주화, 통일운동을 전개한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1950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4.19혁명기에 조직된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상북도연맹 결성시 초대위원장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여러 차례 공안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바 있으며,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을 당하였다. 2007년 1월 서도원 등에 대한 재심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정의
대한민국의 8·15광복 이후 민주민족청년동맹, 인민혁명당, 경락연구회, 인민혁명당 재건위 등에서 활동한 민주화, 통일 운동가.
인적 사항

서도원(徐道源)은 1923년 3월 28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주요 활동

8 · 15광복 직후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구 합동신문사 및 대구 남선경제신문사 기자,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청구대학(지금의 영남대학교) 학생주임 등을 지냈으며, 동양사를 강의하였다. 4 · 19혁명 직후인 1960년 말 청구대학에서 1천여 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경북도맹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이때 서도원은 초대 위원장으로서 도예종(간사장), 송상진(사무국장)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1월 11일 자 『 영남일보』에 ‘민민청 경북도맹 준비위원 일동’ 명의로 ‘조국 통일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대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 6일 판문점 남북학생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자 회담이 장충공원에서 열렸는데, 서도원은 도예종 · 김금수 · 이수병 · 김상찬 등 민민청의 주요 간부들과 함께 참여하여 학생 회담을 위한 지원 방안을 협의하였다.

5 · 16군사쿠데타 발발 직후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에 의해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6조 위반으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아 서울교도소에서 복역 중 1963년 12월에 석방되었다.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인혁당사건)에 연루된 바 있으며, 1967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69년 김태구 등과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된 바 있다.

1971년 9월경 서울 종로1가 청진여관에서 결성된 경락연구회의 대표로 선임되었다. 경락연구회는 서도원 · 이수병 등이 주도하여 결성되었는데 이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서도원 · 우홍성 · 김세원 · 이수병 등이 결성 논의 당시 참여하였으며, 전통 의학, 자연 건강 교육과 목적을 내세우면서 각 지역의 활동가들을 규합하고자 하였다. 이 조직은 예비 지도 조직의 위상을 띠고 있었으며,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이던 사회운동가 중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협의체 성격을 띠고 있었다. 서도원은 이 조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체포, 투옥되었다.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는 서도원 · 도예종 등이 지도위원으로서 조직의 중심을 형성한 것으로 발표하였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사형 판결을 확정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대문교도소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서도원을 비롯하여 김용원 · 여정남 · 우홍선 · 이수병 · 송상진 · 하재원 등 7명이 함께 희생되었다. 2007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 판결에 따라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1(돌베개, 2008)
김민희, 『쓰여지지 않은 역사』(대동, 1993)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 편, 『암장』(지리산, 1992)
『한국혁명재판사』 제4집(한국혁명재판사편찬위원회, 1962)

논문

김선미, 「이종률의 민족운동과 정치사상」(부산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8)
집필자
김지형(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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