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의 오대산에 있는 암자이다. 사자암이라고도 불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산내암자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신문왕의 왕자 보천(寶泉)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서 출가하여 수행하다가 오대산의 오대를 참배하던 중에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만인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중대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때에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다닌다 하여 사자암이라고도 칭했다. 1401년(태종 1) 왕은 권근(權近)에게 절의 중건을 명하였는데 불상을 봉안하고 요사채와 목욕소를 만들게 하였다. 이해 11월에 태종은 절에 거둥하여 성대한 법요식과 낙성식을 베풀었다. 이때에 태종은 다시 권근에게 명하여 “먼저 떠난 이의 명복을 빌고, 후세에 이르기까지 그 이로움을 미치게 하여 남과 내가 고르게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자 하니, 경은 이 일을 글로 적어 후세에까지 알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 뒤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한암중원(漢巖重遠, 1876~1951)이 봉은사를 떠나 이 절에 들어오면서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입적할 때까지 26년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수행하였다. 이 암자는 본디 상원사의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속한 향각(香閣)이었으며 분수승(焚修僧)이 거처해 왔다. 전각으로는 산자락을 정비해 건축한 5층의 건물과 그 위에 자리 잡은 법당이 있다. 한암이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단풍나무는 죽고 그 옆에 새로운 나무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