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대례장) (())

의생활
의복
개항기 이후, 육군이 국가의 의식, 제사 등의 대례 시에 착용한 복장.
의복
재질
융(絨)
제작 시기
1895년(고종 32) 이후
관련 의례
성절(聖節)|각전탄일(各殿誕日)|원조(元朝)와 동지(冬至)의 문안과 진하(陳賀)|태묘(太廟)|태사(太社) 산능(山陵)에 행행(幸行)할 때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육군박물관|고려대학교박물관|연세대학교박물관 등
내용 요약

정장(대례장)은 개항기 이후 육군이 국가의 의식, 제사 등의 대례 시에 착용한 복장이다. 1895년 4월의 칙령 제78호 「육군복장규칙」에서 육군의 복장 중 가장 성장한 복장을 정장으로 정하였다. 복장 구성은 깃털 장식인 전립을 꽂아 장식한 모자, 상의, 바지, 견장, 식대, 도나 검, 정서, 흰 가죽 장갑, 흰색 땀받이용 천, 화로 이루어졌다. 1906년 5월의 칙령 제22호 「육군복장규칙」에서 대례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형태는 1895년 싱글 브레스티드형, 1897년 늑골복형, 1900년 더블 브레스티드형으로 변화하였다.

정의
개항기 이후, 육군이 국가의 의식, 제사 등의 대례 시에 착용한 복장.
연원

1895년(고종 32) 4월 9일 칙령 제78호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에서 육군의 복장은 정장(正裝), 군장(軍裝), 주9, 상장(常裝)의 4종으로 주1. 정장은 의식, 제사 등의 대례(大禮) 때에 착용하는 것으로, 그 경우는 주10, 각전탄일(各殿誕日), 주11동지(冬至)의 문안과 진하(陳賀), 주12, 주13, 산능(山陵)에 행행(幸行)하는 것이었다. 정장을 구성하는 품목은 깃털 장식인 전립(前立)이 장식된 모자, 웃옷인 의(衣), 바지, 견장, 주14, 도(刀)나 검(劍), 검에 장식하는 끈인 정서(正緖), 흰색 가죽 장갑, 흰색 땀받이용 천, 화(靴)였다. 정장은 전립, 견장, 식대, 정서 등에서 주15, 예장과 차이가 있었다. 정장은 육군의 복장 중 가장 주16한 복장으로, 정장을 착용했을 때는 말의 차림새인 마장(馬裝)에도 굴레에 예비용 고삐, 코끈, 안미(鞍尾) 등을 더 주2.

형태 및 용도

정장을 구성하는 각 품목의 형태는 「육군장졸복장제식(陸軍將卒服裝制式)」을 통해 알 수 있는데 1895년에는 따로 발표되지 않았고, 『의주(議奏)』에 ‘육군장교복제도례해역(陸軍將校服製圖例觧譯)’이라는 제목으로 각 품목의 해설이 남아 있어 형태를 파악할 수 주3. 이후 1897년(고종 34) 5월 15일 조칙 「육군장졸복장제식」, 1900년(광무 4) 7월 2일 조칙 「육군장졸복장제식」, 1907년(광무 11) 10월 1일 칙령 제26호 「육군복장제식(陸軍服裝制式)」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정장 형태는 장교 복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95년 규정에서 정장은 투구형 모자에 깃털 장식인 입전모를 끼우고 앞 중심에 한 줄 단추가 있는 싱글 브레스티드(single-breasted) 형태의 상의에 바지를 착용하였다. 또한 도, 정서(正緖), 식대, 흰색 가죽 장갑 등의 부속품을 착용하였다. 투구의 정면에는 주17와 잎사귀로 이루어진 주18을 달고 정수리에는 주19 모양의 정상장(頂上章)과 별 문양으로 계급을 표시하였다. 웃옷은 흑라사(黑羅紗)로 만들었고, 무늬가 없는 주20 단추를 달았으며 소매에 직선과 태극(太極)으로 계급을 나타냈다. 옷깃에는 은으로 만든 별을 달았다. 바지는 흑융(黑絨)으로 만들고 적색의 봉장(縫章)을 대었다. 도는 손잡이에 이화와 태극을 조각하였고, 정서는 흑견(黑絹)으로 만들었다. 식대는 허리에 두르는 띠와 늘어뜨리는 술로 구성되는데 계급에 따라 띠와 술의 색을 다르게 하였다. 견장은 금색 바탕에 은색의 테두리를 두르고 별 문양으로 계급을 장식하였다.

1897년 규정에서 정장은 입전모를 장식한 주27, 대례의(大禮衣), 대례견장(大禮肩章), 바지, 도와 도대, 식대, 흰색 가죽 장갑 등의 부속품을 주4. 정모는 원통형으로 상반부와 하반부에 양고직(兩股織)으로 계급을 표시하였다. 정수리 부위와 정면 표장에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을 금실로 주28 단추에는 무궁화 문양을 새겼다. 대례의는 앞면에 매듭을 가로로 장식한 늑골복(肋骨服) 형태로 재질은 흑색 융(絨)이며 옷깃과 소매 끝에 홍색 융을 덧붙였다. 옷깃과 소매에는 계급을 표시하였는데 옷깃에는 별과 주29으로, 소매에는 인자형(人字形)으로 계급마다 차이를 두어 새겼다. 인자형 꼭대기에는 금실로 무궁화를 자수하였다. 대례의 앞면에는 매듭끈을 이용하여 무궁화를 만들어 가슴 좌우에 붙이고 가운데는 매듭단추로 여몄다. 바지는 흑색 융에 홍색의 봉장(縫章)을 붙였다. 대례견장은 금실로 직조한 재질을 사용하였고 타원형과 직사각형을 합친 형태였다. 단추에는 오얏꽃을 새겼다. 높은 계급은 대례견장의 타원형 아래에 금실의 술을 달았다. 타원형 위에는 태극, 무궁화 나뭇가지, 별, 화살로 계급을 나타내는 표시를 하였다. 이 외의 제도는 1895년과 같았다.

1900년 규정에서 정장은 대례의의 형태가 두 줄 단추로 여미는 더블 브레스티드(double-breasted) 형태로 주5. 재질은 흑색 융으로 옷깃, 소매 끝, 뒤트임 장식에 홍색 융을 덧붙였고 계급을 장식하는 방법은 이전 시기와 같았다. 다만 여밈 및 장식 단추에 무궁화가 새겨진 금속제를 사용하였다.

1897년의 「육군복장규칙」에서 정장은 문안할 때, 환구묘사(圜丘廟社)와 전궁동가(殿宮動駕) 할 때, 일응대전례(一應大典禮), 친임행례(親臨行禮) 후 문안할 때에 착용하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1906년(광무 10)에는 정장의 명칭이 대례장(大禮裝)으로 변화되었고 주32할 때, 장충단(獎忠壇) 치뢰(致酹)할 때, 주31의장(儀仗)을 위하여 주33할 때 등과 일반 예복을 착용할 때, 집안의 결혼, 장례, 제사 때 착용하라는 내용이 주6.

정장을 입을 수 있었던 군인은 1895년 장교 및 하사졸(下士卒)이었다가 1897년 장교만 착용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이후 1906년에 정장이 대례장으로 변화하면서 다시 장교와 하사 병졸이 착용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변천 및 현황

정장을 규정한 법령인 「육군복장규칙」은 1897년 5월 15일과 1906년 5월 22일에 전면 개정이 있었다. 이 중 1906년에는 정장의 명칭이 대례장으로 바뀌었고 착용 상황도 시기에 맞게 더 세분화되었다. 구성품의 세부적인 명칭에 있어서도 시기별로 차이가 있었는데 예를 들면 모자의 경우 1895년에는 모(帽), 1897년에는 정모, 1906년에는 주26로 하는 등의 차이가 있었다.

정장을 구성하는 각 품목의 형태를 규정한 「육군장졸복장제식」은 1897년 5월 15일, 1900년 7월 2일, 1907년 10월 1일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로 인해 개항 이후 대한제국기 동안 군복 형태의 변화를 4기로 구분하기도 주7. 실루엣의 변화를 기준으로 정장은 1895년의 싱글 브레스티드형에서 1897년 늑골복형으로 변화하였다가 1900년에는 더블 브레스티드형으로 변화하였다. 1907년에는 정장의 명칭이 대례장으로 바뀐 것 외에는 1900년의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의의 및 평가

정장(대례장)은 주21 이후 도입된 서양식 육군 복장 중 가장 성장한 것으로 함께 주22 부속품들도 가장 화려하고 많았다. 개항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정장은 국가의 경절이나 제사를 지낼 때, 주23주24 등의 상황에서 착용하여 근대 국가의 육군 복장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을 하였다. 정장(대례장)은 형태적으로 서양의 군복을 도입한 것이었지만 모자, 칼라, 소매, 견장, 식서, 식대, 도와 도대 등에 활용된 문양으로 무궁화, 이화, 태극 등의 국가 상징 문양을 주8 대한제국의 정체성을 지닌 제복이라는 특징을 명백하게 나타내었다.

참고문헌

원전

『(구한국) 관보(官報)』
『고종실록(高宗實錄)』
『의주(議奏)』

단행본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의 군복식발달사』 1(1997)

논문

목수현, 「대한제국기 군복에 도입된 국가 상징」(『학예지』 28,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21)
박가영·이경미, 「대한제국의 상징 복식, 군복」(『강군의 염원, 대한제국 군을 다시 보다』, 육군박물관, 2021)
이경미·노무라 미찌요·이지수·김민지, 「대한제국기 육군 복장 법령의 시기별 변화」(『한국문화』 8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8)
이지수·이경미, 「개항 이후 대한제국기까지 육군 복식의 상징 문양에 대한 연구」(『복식』 70-4, (사)한국복식학회, 2020)
주석
주1

『(구한국)관보』 제10호 개국 504년 4월 11일

주2

박가영, 이경미, 「대한제국의 상징 복식, 군복」, 육군박물관, 『강군의 염원, 대한제국 軍을 다시 보다』(육군박물관, 2021)

주3

『의주(議奏)』 권6 개국 504년 4월 5일~19일)62a~76b

주4

『(구한국)관보』 제639호 건양 2년 5월 18일

주5

『(구한국)관보』 제1624호 광무 4년(1900) 7월 12일

주6

『(구한국)관보』 제3889호 융희원년(1907) 10월 5일

주7

이경미, 노무라미찌요, 이지수, 김민지, 「대한제국기 육군 복장 법령의 시기별 변화」(『한국문화』 83, 2018)

주8

목수현, 「대한제국기 군복에 도입된 국가 상징」(학예지 제28집, 2021)

주9

예복을 입고 위엄 있는 몸가짐이나 차림새를 갖춤. 우리말샘

주10

성인(聖人)이나 임금의 생일을 경축하는 명절. 우리말샘

주11

설날 아침. 우리말샘

주12

종묘의 정전(正殿).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으로, 초에는 목조, 익조, 탁조, 환조 등 태조의 사대조(四代祖)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에는 당시 재위하던 왕의 사대조(四代祖)와 조선 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19칸으로, 단일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우리나라 국보로, 국보 정식 명칭은 ‘종묘 정전’이다. 우리말샘

주13

조선 시대에, 임금이 토지신에게 제사 지내던 사당. 우리말샘

주14

드레스의 허리나 모자 따위에 장식하는 띠. 우리말샘

주15

군인의 복장. 우리말샘

주16

잘 차려입음. 또는 그런 차림. 우리말샘

주17

배나무의 꽃. 우리말샘

주18

어떤 일에 좋은 성과를 내었거나 훌륭한 행실을 한 데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함. 또는 그것에 대하여 명예로운 증서나 메달 따위를 줌. 우리말샘

주19

화살 끝에 박은 뾰족한 것. 쇠, 돌, 나무 따위로 만든다. 우리말샘

주20

은의 빛깔과 같이 반짝이는 색. 우리말샘

주21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무렵, 우리나라가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요구로 문호를 열어 외국과 통상을 시작하는 시기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2

훈장이나 명패 따위를 몸에 달다. 우리말샘

주23

임금이 탄 수레가 대궐 밖으로 나감. 우리말샘

주24

임금이 대궐 밖으로 거둥함. 우리말샘

주26

예복을 입을 때 격식에 맞추어 쓰는 모자. 우리말샘

주27

정복(正服)에 갖추어 쓰는 모자. 우리말샘

주28

옷감이나 헝겊 따위에 여러 가지의 색실로 그림, 글자, 무늬 따위를 수놓다. 우리말샘

주29

‘一’ 자의 모양. 우리말샘

주31

지휘관이 군대를 사열하는 의식. 열병식과 분열식이 있다. 우리말샘

주32

황제나 황후를 만나 뵘. 또는 그런 일. 우리말샘

주33

용무를 위하여 임시로 다른 곳으로 나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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