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 ( ())

의생활
의복
문화재
대한제국기, 육군 부위 황석이 착용한 서구식 군복의 예복 및 상복 유물.
의복
재질
흑융, 홍융, 가죽 등
제작 시기
대한제국기
관련 의례
육군이 정장, 군장, 예장 등을 착용할 때의 의례
소장처
육군박물관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소재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내용 요약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은 대한제국기 육군 부위 황석이 착용한 서구식 군복의 예복 및 상복 유물이다. 2020년 10월 15일에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예복 구성품으로 입전모와 예모, 예복 상의, 식대, 도대가 있고, 상복 구성품으로 상모 2점, 상복 상의, 소례 견장 2점이 있으며, 하의 2점, 멜빵 1점이 있고, 외투 1점이 있어서 모두 14점이다. 1900년(광무 4)에 개정된 「육군복장규칙」의 규정에 따라 제작된, 더블브레스트형의 예복 상의와 싱글브레스트형의 상복 상의 형태이다.

정의
대한제국기, 육군 부위 황석이 착용한 서구식 군복의 예복 및 상복 유물.
연원

황석(黃淅, 1849~1938)은 1849년(헌종 15)에 출생하여 1896년(고종 33) 47세의 나이로 육군 참위(參尉)로 임명되었다. 이후 1898년(광무 2)에 육군 부위(副尉)로 승진하였고 해주, 울산, 평양, 전주의 진위대(鎭衛隊)에서 1906년(광무 10)까지 근무하였다. 해당 유물은 황석이 육군 부위로 지낼 당시 착용하였던 군복의 예복(禮服)과 상복(常服)의 구성품으로 2018년 11월 황석의 후손이 문중에서 보관해 오던 군복 유물과 함께 초상화, 관직 생활 당시의 공문서, 여러 고문서를 육군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이 유물은 구성 품목이 다양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2020년 10월 15일에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형태 및 용도

개항(開港) 이후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에 육군 장교의 계급은 장관(將官), 영관(領官), 위관(尉官)으로 나누어졌고, 더 세분하여 대장(大將), 부장(副將), 참장(參將), 정령(正領), 부령(副領), 참령(參領), 정위(正尉), 부위(副尉), 참위(參尉)로 나누어졌다. 황석은 육군 부위 계급으로 이는 장교 중 아래에서 두 번째 계급에 해당하였다. 황석의 육군 복식 형태는 1897년(고종 34)과 1900년(광무 4)에 개정된 「육군장졸복장제식(陸軍將卒服裝制式)」을 따르고 있고 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복으로 분류된 품목은 입전모(立前毛)와 예모(禮帽), 예복 상의(上衣), 식대(飾帶), 도대(刀帶)이다. 예모는 정모(正帽)라고 부르는데 정장(正裝)으로 착용할 때 입전모를 끼워서 장식하였다. 정모의 정수리와 상반부는 흑색 융(絨)으로 만들었고, 상반부의 전후좌우에 세로로 금선양고직(金線兩股織)을 한 줄씩 붙였다. 하반부는 보병(步兵) 병과를 나타내는 홍색 융(絨)을 바탕색으로 하고 그 위에 가로로 양고직(兩股織) 2줄을 둘렀다. 모자의 세로선과 가로선은 계급을 나타내는 것으로 세로선 한 줄은 위관 계급을 나타내고 가로선 2줄은 위관 중 부위 계급을 나타내었다. 모자의 윗면에는 홍색의 이화(李花) 장식을, 정면에는 이화와 무궁화꽃 가지가 자수(刺繡)된 표장(表章)을 붙였다.

예복 상의는 대례의(大禮衣)라고 하는데 도금한 무궁화 단추 7개를 두 줄로 단 더블브레스트(double breasted)의 형태이다. 바탕은 흑색 융이고 옷깃, 소매 끝, 뒤트임에 홍색 융을 붙였다. 계급을 나타내기 위해 옷깃에 의령장(衣領章), 소매에 수장(袖章)을 달았다. 의령장은 상하단에 1줄씩 직선을, 깃 좌우에 별 1개씩을 수놓았다. 수장은 소매 끝의 홍색 융 위에 브레이드로 정도기자(正倒己字) 문양(文樣), 그 위에 금실로 짠 양고직 2줄을 인자(人字) 모양으로 붙였다. 인자형 양고직의 숫자는 계급을 나타낸 것으로 참위 1줄부터 대장 9줄까지 붙였다. 황석은 부위였으므로 2줄을 붙였다. 식대는 적색 실로 넓게 짠 띠로 만들었고, 그 양쪽 끝에 황색의 술을 달았다. 도대는 검정색 가죽으로 만들었다.

둘째, 상복으로 분류된 품목은 상모(常帽)와 상의(常衣)이다. 상모는 두 점으로, 정모와 형태가 같지만 흑사편직(黑絲編織)으로 만든 양고직과, 도금하여 주조한 정면 표장을 붙였다. 상의는 한 줄 단추로 여미는 싱글브레스트(single breasted)의 형태로, 옷깃, 수구, 뒤트임 장식으로 흑색 융을 썼다. 영장(領章)은 없고 깃 사방에 홍색 선 1줄을 둘렀으며 깃 좌우에 금속제 별을 달았다. 수장으로는 흑사직(黑絲織)을 사용하였다.

소례견장(小禮肩章)은 2점으로 홍색 융 재질을 사용하여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었다. 견장에도 계급을 표현하였는데 부위 계급은 홍색과 흑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자수하고 그 좌우에 은색 실로 화살을 2개씩 자수하여야 했지만 유물은 금속제 화살이 붙어 있다.

셋째, 바지는 예복과 상복에 같이 착용하였고 2점이 남아 있다. 흑색 융으로 만들었고 옆선에 봉장(縫章)으로 홍색 융 1줄을 붙였다. 이 시기에는 바지를 착용할 때 멜빵이 필요하였는데 본 유물에 포함되어 있다.

넷째, 외투는 흑색 융 재질이고 더블브레스티트 형태이다.

1897년에 개정된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을 기준으로 육군의 복장에는 정장(正裝), 군장(軍裝), 예장(禮裝), 상장(常裝)이 있었다. 정장은 국가 경축일이나 제사를 지낼 때 등에, 군장은 전투나 군사 훈련 상황 등에, 예장은 공식적인 연회(宴會) 등에, 상장은 공사(公私) 구별 없이 항상 착용하였다. 정모, 대례의, 바지, 도, 도대 등을 착용하고 입전모, 대례견장(大禮肩章), 식대를 더하면 정장이었고, 소례견장을 더하면 예장이었다. 또한 상모, 상의, 도, 도대 등을 착용하고 소례견장을 더하면 군장이었다. 이와 같이 착용 상황에 따라 갖추는 품목을 달리하여 군복의 용도를 구분하였다.

변천 및 현황

개항 이후 대한제국기 동안 군복의 형태는 4번 변화하였다. 1895년(고종 32)의 최초 제정에 해당하는 제1기는 투구형 모자와 싱글브레스트 상의였고, 제2기는 1897년의 개정으로, 모자는 케피형, 상의는 늑골복(肋骨服) 형태였다. 1900년 7월에 개정된 제3기부터는 예복 상의(上衣)는 더블브레스트형, 상복 상의는 싱글브레스트형으로 변화하였다. 1907년(광무 11)에 개정된 제4기는 예복 형태의 변화는 없었고, 상복 상의(常衣)의 색상이 다갈색으로 변화하였다.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은 3기에 해당하므로 1900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자와 견장의 경우에는 1897년 규정이 이후에도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 규정에 따라 제작된 것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 및 평가

보병 부위 예복 및 상복(황석)은 2020년 10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육군의 예복 및 상복을 구성하는 복식 품목이 다양하고 대부분 온전하게 남아 있어 대한제국기 육군 장교의 복식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특히 부위의 상모, 도대, 외투, 멜빵 등은 희소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원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구한국) 관보(官報)』

단행본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의 군복식발달사』 1(1997)
단국대학교부설 동양학연구소, 『구한국 관보 복식 관련 자료집』(민속원, 2011)

논문

박가영·이경미, 「대한제국의 상징 복식, 군복」(『강군의 염원, 대한제국 군을 다시 보다』, 육군박물관, 2021)
박선희·최연우, 「대한제국 육군 부위 황석(1849~1938) 초상화의 군복 연구」(『한복문화』 24-4, (사)한복문화학회, 2021)
이경미·노무라미찌요·이지수·김민지, 「대한제국기 육군 복장 법령의 시기별 변화」(『한국문화』 83,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8)
이경미·박가영, 「등록문화재 제543-7호 황석 유물로 본 대한제국 군복」(『학예지』 28, 육균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21)

인터넷 자료

‘대한제국 장교가 입던 군복 세트 세상에 나왔다’,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181104010500005)

기타 자료

『2020년도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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