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해백생원결다라니』는 작은 절첩본(折帖本)이다. 표지는 후대에 추가로 붙여진 ‘불설해백생원가경(佛說解百生寃家經)’이란 묵서의 제목이 인쇄된 변란(邊欄)의 제첨(題簽) 내에 필사되어 있고, 권수제는 ‘불설해백생원결다라니경(佛說解百生寃結陀羅尼經)’이지만 권말의 제목은 ‘불설해백생원가경’이다.
이 책의 크기는 21.3×8.5cm로 작은 절첩본(折帖本)이며 표지에는 후대에 추가로 붙여진 ‘불설해백생원가경(佛說解百生寃家經)’이란 묵서의 제목이 인쇄된 변란(邊欄)의 제첨(題簽) 내에 필사되어 있고 권수제는 '불설해백생원결다라니경(佛說解百生寃結陀羅尼經)'이지만 권말의 제목은 ‘불설해백생원가경’이다.
첫 장의 본문 앞 제1면에 새겨진 변상도(變相圖)에는 상부에 보개(寶蓋)가 있고 아래쪽 연화대(蓮花臺) 뒤에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에 이중의 광배(光背)가 그려진 가부좌의 부처상이 좌우대칭형으로 새겨져 있다. 전체는 7면 26행으로, 접힌 절첩본으로 각 면에는 4행 11자를 기준으로 몇 자의 출입을 보이고 있으며 수록 내용이 적고 길이가 짧은 경전이다. 인쇄된 경전이 끝나고 간행 당시의 발원문 4행이 있고 이어 후대에 인출할 때의 관련 기록을 세필의 묵서로 적어두었다. 인쇄된 바탕의 지질(紙質)은 세로 발끈의 폭이 보이지 않고 도침에 의하여 광택이 나는 닥종이이다.
제목에 이어 한자로 된 진언인 옴아아음아(唵啊啊喑噁)가 있고 본문이 마친 뒤에도 ‘해원결진언(解寃結眞言)’이 한문과 한자음 차자표기의 진언이 혼합되어 4행으로 기술되어 있다. 내용은 부처께서 비야리성 나무 아래 팔천의 비구 대중에게 보광보살마하살(普光菩薩摩訶薩)의 옛날 인연으로 말씀하시기를 미래의 말법 세상에서 중생들이 죄를 짓고 그 원한으로 복수가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선남자, 선여인이 7일 동안 목욕 재계하고 이 다라니(陀羅尼) 108편과 보광보살마하살의 명호를 매일 아침 외우면 집안의 원한이 소멸되고 만나지 않게 된다고 설하였다는 것이다.
본문과 진언이 끝난 뒤 권말의 하단에는 간행 당시의 발원 기록으로 입내시위위경(入內侍衛尉卿) 김지성(金之成)이 국왕의 장수를 빌고 나라가 평온하며 온 백성이 편안하기를 기원하면서 글 잘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재본(登梓本)을 쓰게 하여 간행하여 배포하게 한다고 을유년(乙酉年) 7월 보름날에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의 간행 연도는 이 간행물과 함께 발견된 1042년 임피현에서 최적량이 간행한 금강경과 종이, 서체, 판각 상태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을유(乙酉)는 정종(靖宗) 11년(1045)이나 숙종(肅宗) 10년(1105)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나 1045년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간행이 있은 후 이 판목을 이용하여 경인년(庚寅年) 4월에 정순(鄭珣)이 돌아가신 부모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불국토(佛國土)에 들어가기를 기원하면서 인출(印出)하여 널리 베풀었다는 기록이 마지막 4행에 걸쳐 묵서로 필사되어 있다. 이 책의 판각 및 간행 시기를 1045년으로 비정할 때, 그 이후의 인출 시기인 경인(庚寅)은 문종(文宗) 4년(1050)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대장경 등에 수록되지 않았던 경전으로 저자나 번역자에 대한 기록을 알 수 없고 다만 돈황(敦煌)의 사경 중에 전해지고 있는 몇 종이 『돈황보장(敦煌寶藏)』과 펠리오나 스타인 발굴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의 박물관 도록에서 이 책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자료의 원문을 돈황 사경들과 비교할 때 권말의 해당 진언 표기를 비롯하여 5곳에서 표기나 내용상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책의 제목도 ‘불설해백생원결다라니경(佛說解百生寃結陀羅尼經), 불설해백생원가다라니경(佛說解百生怨家陀羅尼經), 불설해백생원경(佛說解百生怨經), 불설해백생원가경(佛說解百生怨家經)’ 등으로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