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 철화 삼산뇌문 산뢰(白磁 靑畵 鐵畵 三山雷文 山罍)
유약(釉藥)은 푸른 기가 감도는 초기 백자유로 빙렬(氷裂)이 없고, 얇고 고르게 입혀져 있으며, 안다리굽의 바닥에는 모래받침 흔적이 남아 있다. 이 항아리는 종묘(宗廟)의 제례(祭禮) 때 사용된 ‘산뢰(山罍)’라는 제기로 『세종실록』,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산뢰 그림이 나와 있다. 특히,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서례』에 실린 문양과 비슷하여, 이 제기가 15세기 후반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자 산뢰로서 그 가치가 높으며,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 번천리요(樊川里窯) 등의 가마에서 제작된 최상급 백자로서, 특이한 용도와 더불어 청화와 철화를 함께 사용한 귀중한 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