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朝鮮日報)
1931년 7월에는 안재홍이, 1932년 4월에는 유진태(兪鎭泰)가, 다시 6월에는 조만식(曺晩植)이 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조병옥(趙炳玉) · 주요한(朱耀翰) 등이 참여하였다. 그러나 수차례의 정간, 특히 1년이 넘는 정간은 폐간이나 다름없어 재정은 황폐해지고 사원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초창기에 경영상의 시련을 겪어 오던 이 신문은 1933년 방응모(方應謨)가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 중흥을 도모하였다. 방응모는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이라는 사시(社是)를 제정하고, 편집 진용에 이광수(李光洙) · 주요한 · 서춘(徐椿) 등을 기용하였다. 1933년 7월 조만식 사장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방응모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태평로 1가 61에 현대식 사옥을 신축하고 전광식 고속윤전기 · 자동주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