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28일 서울 계동에서 200여 명이 모여,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벽에 걸고 조헌영(趙憲永)의 사회와 조병옥(趙炳玉)의 개회사로 발기인 총회를 가졌다. 광복과 동시에 여운형(呂運亨)이 주도하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가 일방적 독주를 하는 동안, 민족진영 일부 인사들은 건준 부위원장 안재홍(安在鴻)과 합작하여 건준을 개조하고 민족진영 인사들이 대거 참가하여 강력한 민족대표기관으로서 건국대책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건준 내부의 일부 좌익계의 방해로 합작공작이 성공을 보지 못하자, 김병로(金炳魯)·이인(李仁)·백관수(白寬洙)·박명환(朴明煥) 등은 건준과의 합작을 포기, 8월 18일 발족한 원세훈(元世勳) 중심의 고려민주당과 합류하여 발족하였다.
신당발기에 참가한 인사들은 고려민주당계의 원세훈·이병헌(李炳憲)·현동완(玄東完)·박명환·한학수(韓學洙)·송남헌(宋南憲) 등, 김병로계의 백관수·김용무(金用茂)·나용균(羅容均)·정광호(鄭光好) 등, 이인계의 조병옥·박찬희(朴瓚熙)·함상훈(咸尙勳)·신윤국(申允國) 등, 신간회 경성지회계(新幹會京城支會系, 洪命熹系)의 조헌영·이원혁(李源赫)·박의양(朴儀陽)·김무삼(金武森) 등이었고, 공산주의자로서 전향을 표명하고 참가한 김약수(金若水)·유진희(兪鎭熙) 등이었다.
조선민족당으로 발기를 선언하였으나, 이것으로는 범민족세력 집결의 제1단계에 불과한 것이므로 범민주세력을 집결한 단일정당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국민당과 통합을 하기로 합의, 9월 4일 서울 종로국민학교에서 두 당이 통합하여 한국민주당 창당발기대회를 가짐으로써 조선민족당은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