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이 작품은 1763년(영조 39) 8월 [일본](E0047193) [통신사](E0059354) [조엄(趙曮)](E0052376), 부사 [이인배(李仁培)](E0045602), 종사관 [김상익(金相翊)](E0009367), 제술관(製述官) 남옥(南玉)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계미(癸未)[통신사(通信使)](E0059354)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한 작자가 이듬해 7월 8일 복명[^1]할 때까지 11개월 동안 견문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군관 17명, 역관 12명, 의원 3명을 비롯, 100여명의 행원(行員)과 400명에 달하는 역원들을 합하여 일행 500명이 [서울](E0028073)을 떠난 지 두달 만인 10월 6일 [부산항](E0024288)에서 승선하여 대마도와 대판성(大阪城)을 거쳐 에도(江戶)[^2]에 도착한 것이 다음해 2월 16일이다. 이역만리의 긴 노정에 따라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 일본의 풍속, 외교임무의 수행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