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31년(조분이사금 2)에 이찬(伊飡) 석우로(昔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을 토벌하고 그 지방을 군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 『삼국사기』지리지 개령군조에 본래 감문소국이었던 것을 557년(진흥왕 18)에 군주(軍主)를 두고 청주(靑州)라 하였으며, 진평왕 때는 주를 폐하고 661년(문무왕 1)에 감문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또, 『동국여지승람』권29 개령현의 고적조에 감문국 때의 궁궐유지가 있다고 하며, 감문현 북쪽 20리에 감문국왕인 ‘김효왕릉(金孝王陵)’이 있고, 현의 서쪽 웅현리에 감문국 때 장부인(獐夫人)의 묘로 전하는 ‘장릉(獐陵)’이 있다고 한다.
개령은 낙동강 지류인 감문천 중류에 있으며, 감문천의 하류에는 선산(善山)이 있어 30리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선산일대의 토성 및 많은 대형고분군과 개령의 토성 및 고분은 당시 감문국의 배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적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