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잡가 ()

목차
국악
작품
문화재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방에서 부르던 잡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무형문화재(1975년 07월 12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목차
정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방에서 부르던 잡가.
내용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방에서 부르던 잡가.

12잡가와 휘모리잡가가 있다. 12잡가는 긴잡가 또는 경기좌창(京畿座唱)이라고도 하며, 이는 선소리[立唱]의 대칭이다. 대개 19세기 중엽에 발생한 속요로, 지금의 서울 청파동 일대의 사계축(四契軸) 소리꾼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그 당시에는 8잡가와 잡잡가(雜雜歌)로 구분하였는데, 8잡가란 <유산가 遊山歌> · <적벽가 赤壁歌> · <제비가> · <집장가 執杖歌> · <소춘향가 小春香歌> · <선유가 船遊歌> · <형장가 刑杖歌> · <평양가 平壤歌> 등이고, 잡잡가는 <달거리> · <십장가 十杖歌> · <방물가 房物歌> · <출인가 出引歌> 등이다.

이것들을 12가사를 본떠서 12잡가로 묶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이 밖에 긴잡가에는 <풍등가 豐登歌> · <금강산타령> · <토끼화상> · <자진방물가> · <변강쇠타령> 등이 있다.

휘모리잡가는 주로 삼패기생(三牌妓生)과 소리꾼 사이에서 널리 불린 소리로, 예전에는 소리꾼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긴잡가를 부르고, 다음에 선소리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휘모리잡가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전창(傳唱)되는 곡으로는 <곰보타령> · <생매잡아> · <만학천봉> · <육칠월흐린날> · <한잔부어라> · <병정타령> · <순검타령> · <기생타령> · <바위타령> · <비단타령> · <맹꽁이타령> 등이 있다.

경기잡가는 사계축 사이에서 처음 불렸다. 사계축이란 지금의 서울역 앞에서 만리재[萬里峴] 위를 돌아서 남쪽으로 청파동 청패까지의 일대를 가리키는 지역 이름인데, 이 지역에서 소리꾼이 많이 났다 하여 사계축 소리꾼이라고 이름이 난 것이다.

소리꾼은 사계축 외에도 문안과 문밖, 우대(옛날 서울 도성 안의 서북쪽 지역, 즉 인왕산 부근의 동네)와 아래대(서울에서 동대문과 광희문 지역을 이르던 말)에도 있었다고 한다.

사계축의 상공인들 사이에는 유명한 소리꾼이 많이 나서 이 지역에 산재했던 공청(公廳:파를 묻는 움집인 경우가 많았음)이 소리꾼들의 공연장이며 동시에 연습장 겸 전수장이 되었다.

이들은 잡가 외에도 가곡 · 가사 · 시조도 불렀다. 사계축의 명창으로는 흔히 추교신(秋敎信) · 조기준(曺基俊) · 박춘경(朴春景) 세 사람을 꼽는다.

추교신은 가장 선배이며 기량도 뛰어나고 가곡 · 가사 · 시조도 잘 불렀다. 조기준은 추교신의 수제자로 애오개 공예인 출신인데 기골이 장대하고 노랫소리가 좋아서 잡가 이외에 가사나 시조에도 뛰어났다. 그의 문하에서 박춘경 · 장계춘(張桂春) · 최경식(崔景植) 등 당대에 뛰어난 명창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박춘경은 농부 출신이었으나 조기준을 사사(師事)하여 시조 · 수잡가(首雜歌) · 긴잡가 · 휘모리잡가를 잘 불렀는데, 특히 잡가는 그로 말미암아 많은 발전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잡가의 중시조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제자로는 한말 재담(才談)의 명인 박춘재(朴春載)가 있고, 잡가에 공헌이 많은 최경식 · 주수봉(朱壽奉)도 박춘경을 사사하였다.

그뒤 한인호(韓仁浩) · 이경준(李慶俊) · 탁순흥(卓順興) · 이현익(李鉉翼) · 장계춘 · 주수봉 · 최경식 · 박춘재 등이 나와서 잡가를 발전시켰다. 박춘재 · 주수봉은 박춘경의 제자이며, 한인호 · 이경준 · 장계춘은 조기준 문하에서 나왔으며, 장계춘 문하에서 최경식이, 한인호 문하에서는 원범산(元範山) 등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한말부터 민족항일기 초까지 협률사 · 원각사 등에서 공연하였으며, 권번(券番:기생들의 조합)을 통하여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최경식은 조기준 · 장계춘 문하에서 가사와 시조를 배웠고, 박춘경에게서 잡가를 공부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제자가 배출되었으니 유개동(柳開東) · 정득만(鄭得晩) · 이창배(李昌培) · 김순태(金順泰) · 엄태영(嚴泰泳) · 김태운(金泰運) · 최정식(崔貞植) · 탁복만(卓福萬) · 박인섭(朴仁燮) · 이명길(李命吉) · 원경태(元慶兌) 등이다. 오늘날 경기소리의 전승은 그의 공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한편, 김홍도(金紅桃)와 보배(寶貝) 등은 1910∼1920년대에 활약하던 여류 명창들이다. 당시에 여류 가인을 양성하는 예기학원(藝妓學院)이 생겼는데, 가곡 · 가사 · 시조 외에 잡가와 민요 등도 가르쳤다. 예기학원은 뒤에 광교조합(廣橋組合)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일본식 명칭을 붙여서 권번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여러 개의 권번이 생겼는데, 한성권번에서는 장계춘이 가곡 · 가사를, 유개동이 잡가를 가르쳤고, 조선권번에서는 하규일(河圭一)이 가곡 · 가사를, 최정식이 잡가를 가르쳤다. 최정식의 문하에서는 정경파(鄭瓊波) · 묵계월(墨桂月) · 안비취(安翡翠) · 조백조(趙白鳥) 등의 여류 명창이 나왔다.

광복 후에는 최경식이 대한국악원을 중심으로 이창배와 함께 활약하던 중 6 · 25전쟁으로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창배가 1957년 청구고전성악학원(靑丘古典聲樂學院)을 만들어 경서도소리를 가르치면서 이곳이 경서도소리 명창들의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1975년에 경기잡가 중 긴잡가는 경기민요라는 이름으로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98년 현재 묵계월 · 이은주(李銀珠)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1) 12잡가

음악적 특징은 12가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즉, 장단이 가사처럼 4분의 6박자인 도드리장단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며, 예외로 <집장가>만이 세마치장단으로 되어 있다.

음계는 서도민요의 선법을 딴 것이 대부분이고, <선유가> · <평양가> · <달거리> · <출인가> 등이 경기민요처럼 경제(京制)로 되어 있다. 형식은 약간 불투명한 유절형식(有節形式), 즉 마루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설은 가사가 지식층들이 즐겨 인용하는 한문시를 많이 혼용하고 있는 데 반하여, 잡가는 서민들의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 창법은 가사가 가늘고 부드럽고 세련된 발성법에 때로는 속청(falsetto)을 쓰고 정악적(正樂的)인 표현법을 써서 마치 세피리를 연상시키는 데 반하여, 잡가는 소위 ‘잡가목’이라 하여 굵고 힘차고 폭이 넓은 요성(搖聲)을 써서 마치 굿거리 때 부는 향피리 같은 감이 난다.

(2) 휘모리잡가

사설은 옛 장형시조 가운데서 우습고도 해학적이며, 재미있는 것을 골라 빠른 한배로 불러 나간다. 따라서 그 음악은 시조의 한 변형으로서 사설시조에 넣을 수도 있다. 다만, 장단을 볶는타령장단으로 바꾸고 사설에 군말이 많이 들어가며 발성법이 시조와는 달리 잡가조(雜歌調)라는 것뿐이다.

또한, 휘모리잡가의 마지막 부분은 예외 없이 시조의 종지형처럼 4도 아래로 뚝 떨어져 끝나고 있어 이 점에서도 시조의 한 변형임을 알 수 있다. →경기소리, 잡가

참고문헌

『국악개요』(장사훈, 정연사, 1961)
『가요집성』(이창배, 청구고전성악학원, 1965)
『십이잡가(十二雜歌)』(한만영, 한국국악학회, 1967)
『국악개론』(장사훈·한만영, 한국국악학회, 1975)
『한국가창대계』(이창배, 홍인문화사, 1976)
『한국전통음악대전집』(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75)
『잡가』(한국국악학회, 1983)
집필자
한만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