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5년(숙종 31) 영천군 유림의 공의로, 임진왜란 당시 경주 선천진(宣川陣)에서 순절한 10의사 김대해(金大海) · 김연(金演) · 최인제(崔仁濟) · 정석남(鄭碩男) · 이영근(李榮根) · 이지함(李之菡) · 이일장(李日將) · 이득룡(李得龍) · 이득린(李得麟) · 손응현(孫應晛)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중추적 구실을 담당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뒤 1893년 강당을 중건하였고, 1935년 충현각(忠賢閣)을 건립하고 기적비(紀績碑)를 세웠다. 1940년에는 유림의 공의로 묘우(廟宇)를 건립하고 순국사(殉國祠)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1949년 위패를 봉안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 · 신문(神門) · 강당 · 포사(庖舍) · 유사실(有司室) · 포사문 · 충현각 등이 있다. 묘우에는 10의사의 위패가 열향(列享)되어 있다. 강당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제향 때 제관의 숙식 및 원내 여러 행사와 회합 · 토론을 하는 곳이다. 포사는 관리인이 거처하며 향례 때 제수를 장만하여두는 곳이고, 유사실은 유사가 집무하는 곳이다.
해마다 봄 · 가을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현재 8월 세번째 정일(丁日)에 한번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며, 유물로는 『충현록(忠賢錄)』의 목판 87판 및 『충현록』외 약간의 문집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4,000평, 대지 2,000평, 임야 5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