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

구미시 전경
구미시 전경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시.
이칭
이칭
일선
정의
경상북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남쪽에는 칠곡군, 서쪽에 김천시, 북쪽에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을 접하고 있다. 동경 128°08′∼128°34′, 북위 36°06′∼36°22′에 위치한다. 면적은 615.49㎢이고, 인구는 421,194명(2018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6개 면, 19개 행정동(30법정동), 172개 행정리(98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구미시 송정동에 소재한다.

자연환경

지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동·서·북쪽에는 산지가 발달했고, 이들에 의해 중앙부에는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의 중앙을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관류하고 있어 그 연안은 광활한 지역으로 넓은 평야를 이루었으며,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로 양분되어 지질분포의 특성에 따라 특징적인 지형을 나타낸다.

북서쪽은 대부분이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삭박작용(削剝作用)을 받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낙동강에 직교하면서 흘러드는 지류는 충적층을 형성하고 있다.

소백산 줄기의 군봉(郡峰)이 남쪽으로 흘러 뻗어 형성한 연악산맥(淵岳山脈)의 지맥인 수선산(修善山, 684m)·복우산(伏牛山, 509m)·원통산(元通山, 476m)·옥녀봉(玉女峰, 520m)·비봉산(飛鳳山)·삼봉산(三峰山, 448m) 등이 솟아 남쪽으로는 금오산(金烏山, 977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쪽에는 팔공연산(八公連山)의 지맥인 유학산(遊鶴山, 839m)·청화산(靑華山, 701m)·냉산(冷山, 692m)·베틀산(369m) 등이 솟아 곳곳에 고산준령이 있다. 퇴적암으로 된 천생산(天生山, 407m), 응회암질 암층으로 구성된 봉두암산(鳳頭岩山, 327m)과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산계가 급한 경사와 상당한 기복량을 나타내며, 그들 사이를 이계천이 동서로 개석(開析)하면서 충적층을 이룬다.

또한 북서부지역의 중앙부에는 감천(甘川)·해평천 등 크고 작은 지류를 합치면서 낙동강이 남류하고, 유역에는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선산분지를 이루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도문리의 냉일재에서 발원해 남서류하면서 해평면 도문리·월호리·낙성리·해평리를 관류하는 습문천(習文川)은 해평면 부근에서, 장천면 오로리·금산리·상림리를 흐르는 금산천과 여남리·상장리를 남서류하는 한천이 도심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습문천은 곡저평야가 넓고 하류에 넓은 충적평야인 해평들을 형성하며, 해평면의 남부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시의 남부에는 서쪽으로는 금오산 일대가 펼쳐지며 침식에 강한 화성암류로 구성되어 급한 경사와 함께 기복이 심한 산세를 이루어 특징적인 지형발달을 나타낸다. 낙동강 양안에 면한 중앙부는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으나, 점점이 분포된 화강섬록암 지역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기후는 한반도의 남부내륙형에 속하며, 비교적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의 특성을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3.6℃, 1월 평균기온 -0.4℃, 8월 평균기온 25.1℃이며, 강수량은 연평균 1,286.9㎜를 기록했다.

역사

이 지역은 전근대사회에서 선산·인동의 두 지역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 지역의 초기 역사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임수동·인의동, 선산읍 생곡리 등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 이후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어 사회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선산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초기 국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인동지역에는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변군미국(弁軍彌國: 지금의 인동동 일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 선산지역)과 사동화현(斯同火縣: 인동지역)이 설치되었다.

선산지역에 483년(소지왕 5) 큰 수재가 일어나자, 왕이 행차해 백성을 위문하고 곡식을 하사했다고 하며, 614년(진평왕 36) 군사적인 색채가 강한 일종의 군관구(軍管區) 조직인 일선주(一善州)가 설치되었다.

삼국통일 후인 687년(신문왕 7)일선주는 폐지되었고,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일선군은 숭선군(嵩善郡)으로, 사동화현은 인동현(仁同縣)으로 개칭되었다. 한편 일선군의 모례(毛禮)의 집에 눌지왕 때에는 묵호자(墨胡子)가, 소지왕 때에는 아도(阿道)가 와서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후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이곳은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907년(효공왕 11)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한 이래 후백제의 영역에 들어감으로써 후백제가 경상도 북부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936년(태조 19) 양국의 군대가 선산읍 동쪽 일리천(一利川)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여 여기서 승리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때 이 곳의 호족 김선궁(金宣弓)이 왕건에게 귀부해 큰 공을 세워 중용되었고, 이후 그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선주(善州)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되었으나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일선현으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어 해평군·군위현·효령현·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리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되었다.

인동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어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가 되었다. 한편 1235년(고종 22)이유정(李裕貞)이 군대를 이끌고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했고, 1380년(우왕 6)과 1383년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크게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 때 금오산성(金烏山城)과 선주 읍성(邑城)이 축조되어, 백성들이 안주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시 선주는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인동현은 현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각기 군수·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선산군은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 곳의 토지는 선산지역이 비옥한 반면 인동지역은 비옥·척박이 반반이며, 풍속은 선산은 화려하고 학문을 좋아한 반면 인동은 검솔하고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호구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선산은 809호 9,136인, 인동은 320호 2,301인이었다고 한다.

한편 고려 후기 이래 이곳의 선산김씨·해평윤씨·인동장씨들이 명문으로 등장했고, 길재(吉再)의 성리학이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인재(人才)의 부고(府庫)’인 영남지방 중에서 “영남의 인재 가운데 반은 선산에 있다(嶺南人才 半在一善).”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장현광(張顯光)과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선산군·인동군이 되었으나, 1914년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이 시기에 신교육의 보급이 이루어지자, 이곳 유지들은 창선(彰善)·선진(善進) 등의 학교를 건립해 인재양성에 노력했고, 항일의병투쟁에도 적극 참여해 임오동(林吳洞)에서 의병장 허위(許蔿)를 배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4월 3일 해평면에서, 4월 12일에는 선산면에서 각각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6·25 때에 이곳은 북한군의 대구공격을 위한 주된 통로가 되었다. 1963년 구미읍의 승격에 이어 1969년 구미공업단지의 조성으로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8년 구미읍과 인동면의 통합에 따라 구미시로 승격되어 선산군으로부터 독립되었고, 다음 해에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시군의 통합에 따라 구미시와 선산군이 다시 통합되어 구미시로 되었다. 1997년 11월 1일에는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9년 3월에는 선주·원남동을 선주원남동으로, 원평2·3동을 원평2동으로, 사곡·상모동을 상모사곡동으로 각각 통합하였다.

유물·유적

이 시는 낙동강 중류역에 위치해 일찍부터 사람들의 활동 흔적을 많이 남긴 지역이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인평동 고인돌, 선산읍 생곡리 고인돌, 해평면 낙산리 고인돌과 인의동의 인동입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0년 지정)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원평동·황상동고분군, 해평면 월곡리, 구미 낙산리 고분군(사적, 1990년 지정)을 비롯해 선산읍 원리·생곡리 등지에서 많은 고분이 확인된다. 황상동에는 90기가 넘는 대형 고분군이 있는데, 1962년에 그 일부가 발굴조사되어 금동제장신구·철제무기·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금오산성(경상북도 기념물, 1986년 지정)과 장천면의 천생산성(경상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 무을면의 원통산성, 해평면의 송곡리 냉산성, 선산읍의 원리 산성·동부리 비봉산성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금오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보물, 1968년 지정)·구미황상동마애여래입상(보물, 1992년 지정), 구미 해평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8년 지정), 선산궁기동석불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인덕동 석불좌상과 고려 중엽 때의 적림동 석불입상, 도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석탑으로는 8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보물, 1968년 지정), 통일신라 때의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국보, 1968년 지정), 모전석탑과 같은 인상을 주는 해평면 송곡리에 도리사석탑(보물, 1968년 지정)이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도리사(桃李寺)가 있고, 그 외에 무을면 상송리에 수다사명부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대둔사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도리사 극락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이 있다.

고건축물로는 금오서원(경상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낙봉서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인동향교대성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선산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3년 지정)·동락서원강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옥계사가 유명하다.

또 전형적인 조선조 관아 건축인 인동형리청사·구미 쌍암고택(중요민속자료, 1979년 지정)·선산객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해평동북애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3년 지정)·수남위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호고와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근암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79년 지정)·임하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매학정(경상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용와종택및침간정(경상북도 민속자료, 1979년 지정)·삼가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대야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동암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만령초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구미 독동리 반송(천연기념물, 1988년 지정)과 옥성면 농소리에 둘레 15m, 높이 50m, 수령 600년이 되는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970년 지정)가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지산동 일대에서 불리던, 영남아리랑, 어사용, 가래질소리, 망깨소리, 목도소리, 모찌기소리, 모심기소리, 논매기소리, 타작소리, 칭칭이로 구성된 구미 발갱이 들소리(지방 무형문화재, 1999년 지정)가 있다.

그 외에 조정 종가 문적(보물, 1989년 지정), 선산읍 완전리에 단계 하위지선생유허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해평면 송곡리에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 시주질비, 해평면 낙산리에 의구총(경상북도 민속자료, 1994년 지정), 산동면 인덕리에 의우총(경상북도 민속자료, 1994년 지정), 구포동에 구미척화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지주중류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박정희대통령생가(경상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가 있다.

그 외에도 미지정문화재로는 대둔사(大芚寺), 도리사(桃李寺), 수다사(水多寺), 원각사(圓覺寺), 해운사(海雲寺) 등의 사찰과 금오산 대혜폭포(大惠瀑布), 금오산 도선굴(道詵窟), 금오산 약사암(藥師庵) 등의 기타 유적들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서원이 있는데, 향교로는 인동향교(仁同鄕校)·선산향교(善山鄕校) 등이 있다. 고려 말에 창건된 인동향교는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1635년에 중건하였다. 1680년(숙종 6)과 1725년(영조 1)에 각각 중수했으며, 1988년에 임수동으로 이건하였다.

1450년에 창건한 선산향교는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1600년·1623년(인조 1) 두 차례에 걸쳐 중건해 선산읍 교리에 있다. 서원으로는 1570년(선조 3)에 건립한 금오서원은 1575년에 사액되었으나 임란 중에 소실되었다. 1602년에 선산읍 원리에 이건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다.

1655년(효종 6)에 건립한 동락서원(東洛書院)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32년에 복원해 임수동에 있다. 1574년에 건립해 1609년에 사액을 받은 오산서원이 있고 무을면 월암리에는 1630년에 건립해 1694년(숙종 20)에 사액된 월암서원, 해평면 낙성리에는 1647년에 건립해 1787년(정조 11)에 사액, 1931년에 복원된 낙봉서원(洛峰書院)이 있으며, 그 외에도 무동서원·송산서원·사양서원·소암사우·현암사우 등이 건립되었으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다. 그러나 금오서원만은 훼철되지 않고 현존하고 있다.

근대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8년에 선산공립보통학교(지금의 선산초등학교의 전신)가 설립되었으며, 1912년인동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된 뒤에도 17개의 학교가 세워졌으며, 중등학교는 광복 이후에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8개교, 중학교 26개교, 고등학교 21개교가 있으며, 전문대학 1개교, 국책특수대학 1개교, 대학교 2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연시설, 문화복지시설, 문화원 등이 있다.

1994년원평동에 개관한 시립민속관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모습과 민속과 관련된 유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농경유물전시관은 구미시 농업기술센터 내에 마련된 곳으로, 농경유물 전시와 농경생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우리 선조들의 전통 민속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마련된 사회교육장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2003년에 개관된 금오민속박물관이 있다.

1989년 개관한 구미시문화예술회관은 합창단·무용단·소년소녀합창단 등 3개의 예술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술인들의 예술활동을 적극적으로 돕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도서관은 총 4개소로, 도립구미도서관을 비롯하여, 1995년, 1999년에 각각 선산과 인동에 분관을 연 구미시립도서관이 시민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문화강죄를 제공하고 있다.

민속

전래의 민속놀이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세시에 따라 다리밟기·지신밟기·장치기·화전놀이·씨름·그네뛰기·두레삼삼기·풍년놀이·놋다리밟기·백중놀이 등 다양하다.

두레삼삼기는 기후가 삼재배에 알맞아 많은 삼이 생산되어서 부녀자들은 ‘두레삼’이라고 해 수십 명씩 한 조가 되어 삼을 삼았다. 혼자씩 따로 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시일도 많이 걸리므로 수십 명씩 모여서 이야기와 노래로 지루함을 달래면서 삼을 삼았다. 손을 합해 일을 함께 하기도 하고 서로 경쟁을 하기도 하였다.

풍년놀이는 논에 세 번 김매기가 끝나면 머슴들이 벌이는 놀이이다. 상머슴이 기장잎을 망토 모양으로 얽어 쓰고 소에 탄 채 위무당당하게 선두에 서서 나간다. 그 뒤에 많은 머슴들이 농악을 하면서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행진한다. 이어서 주인집으로 가는데, 주인이 직접 맞아들여 그 해의 풍년을 빌며 겸해 머슴들의 노고를 감사하고 술과 음식을 대접해 위로한다.

구미시의 동제는 사직제·여제 등이 있는데 매년 음력 정월보름에 지내는데 14일에 당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새끼줄을 쳐서 잡인의 근접을 금하며, 15일 자시에 마을 수호신에게 제를 지낸다. 제주는 예의 바르고 단정한 50세 이상으로 마을 수호신에 대한 신앙심이 두터운 남성 중에서 임신한 여자를 갖지 않고 상중도 아닌 사람이 선출되며, 제를 지내기 전 일정 기간 동안은 솔잎을 꽂은 금줄을 치며 목욕을 깨끗이 하고, 제주는 불결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다른 집에 불이 나도 불끄는 데 참여하지 않고 정성을 다한다. 신체는 거의 나무로 느티나무·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데, 산동면 도중리의 경우 이와는 달리 장군석상과 동자석상이다. 동제에서는 마을의 무고함과 태평함을 기원한다. 이때에는 동회를 겸해 열고 동제 보고도 하고 한 해 동안의 마을의 일을 의논하기도 하며, 풍기 문제가 의논되기도 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제를 지내기 전에 초상이 나거나 제관에게 불길한 일이 있을 경우 동제를 다음달로 연기를 하기도 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산·바위·연못 등의 자연물과 사찰에 관한 설화와 여러 유형의 민담이 널리 전한다. 선산이 도읍지가 되려다가 안 된 내용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선산은 곡창지대로 낙동강의 감천 등을 끼고 있고 병풍 같은 산들과 봉화대로 쓸 수 있는 금오산·냉산 등이 있어 도읍지로 안성마춤으로 알려져, 옛날 어떤 임금이 천도를 계획하고 순행하다가 이 터를 눈여겨 살펴보기 위해 실제 산골을 세어보니 백골짜기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아흔아홉골이라 애석하지만 포기했다 한다.

그리고 노상리에는 동산이 생긴 유래담이 전한다. 노상리에 노부부가 과년한 두 딸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딸들의 적당한 혼처를 구하지 못해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어느 봄날 딸들은 부모 몰래 나물을 캐러 가서 신세한탄을 늘어놓고 데릴사위를 얻으려는 부모를 원망하였다.

이때 갑자기 멀리 금오산 저편에서 뒷골 갈미봉까지 찬란한 쌍무지개가 뜨고 수많은 천사들이 산봉우리를 메고 두 처녀 쪽을 향하여 두둥실 떠오기 시작하였다. 두 처녀는 깜짝 놀라 큰일났다고 소리를 지르고 집으로 내달았다. 그러자 천사들은 두 처녀의 행동이 괘씸하고, 불길하다고 해 메고 오던 산봉우리를 두 처녀가 놀던 자리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음 날 이들이 살던 집과 가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들 가운데 동그라니 새 동산이 자리잡게 되었다 한다.

또 살인 누명을 썼다가 벗은 어떤 농부의 이야기가 있다. 선산에 살던 어떤 농부가 집에서 기르다가 병든 소를 장에 가서 반값으로 싸게 처분하고 돌아오다가 중간에 쉬면서 길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떤 족제비가 달려들어 소 판 돈이 들어 있던 담배쌈지를 물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농부는 화가 났지만 별도리가 없어 다시 길을 걷다가 주머니에 남아 있던 5전을 가지고 주막에 들어가 술 한 잔을 청해 막 마시려는데, 이번에는 웬 개가 달려들어 술잔을 엎어 깨고 말았다. 병든 소를 판 돈도 잃고, 술 한 잔마저 못 마시게 된 농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돌을 집어 밖으로 던졌는데, 재수 없게도 밖에서 유기그릇을 닦고 있던 주모의 머리에 맞아 주모가 죽고 말았다. 농부는 살인자가 되어 관에 끌려갔다. 농부의 말을 듣고 족제비가 들어간 묘를 확인해 보니, 이 무덤은 바로 주모의 죽은 남편묘였다. 새삼스레 주모가 남편 죽은 바로 다음날 부랴부랴 장사를 지낸 사실을 상기하게 되어, 무덤을 파보니 돈이 든 담배 쌈지가 그대로 있었다. 농부는 주모가 죽었을 때 유난히 자기를 때리던 동네사람을 골라내어 관에 고했고, 관에서 그 까닭을 조사해 보니 주모와 밀통해 남편을 죽인 사실이 밝혀졌고, 그 원한을 갚기 위해 남편의 넋이 족제비로 변해 이 농부를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이 결과 농부는 자기 돈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왔고, 간부(姦夫)는 잡혀서 형을 살았다고 전한다.

또 옛날 해평면 산양리 연향마을에 의구총(義狗塚)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연향마을에 김성원이라는 사람이 황구(黃狗)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퍽 영리하고 기민해 주인의 뜻에 잘 순종했고 항상 따라다니며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김성원이 이웃마을에 놀러갔다가 술이 만취되어 돌아오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월파정(月波亭) 근처에서 잠이 들어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때마침 들불이 숲에서 일어나 김성원이 자고 있는 곳까지 붙을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본 개가 주인의 몸에 불이 옮겨붙지 않게 하려고 수백 보나 떨어진 곳에 있는 강물을 꼬리에 적시어 근방의 불을 끄고 지쳐 죽고 말았다. 술이 깬 주인은 개가 자기 주위에서 몸은 젖은 채 타죽은 것을 이상히 여겨 주변을 살펴보다가 개가 들불을 끄고 자기를 위해 목숨을 잃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몹시 아팠던 김성원은 관을 갖추고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곳을 구분방(狗墳坊)이라 명명하였다. 그 뒤 조선 현종 때 선산부사 안흥장이 돌을 깎아 비석을 세워주고 의구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일선교에서 대구로 나오는 낙동강 동안(東岸) 길 옆에 비석이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도리사와 직지사의 연기설화, 천생산성의 미덕암 등이 전한다.

이 지역은 역사적인 문화 유적이 많고, 예로부터 인재가 많이 났다. 따라서 문학을 숭상했고, 풍속도 매우 순박한 고장이다. 이러한 생활환경으로 다양한 민요가 전해온다.

아이들 노래로는 「자장가」·「달강달강」·「앞니빠진 갈가지」·「파랑새」 등이 불렸고, 향민의 생활을 소재로 한 「이거리저거리」·「영감아 홍감아」·「열무김치」·「엽전한푼」 등과, 동물과 식물을 소재로 한 「까치노래」·「부엉이노래」·「나비노래」·「누에노래」·「노루노래」·「목화 호박 나물캐는 노래」 등이 있다.

아낙네의 노래로는 「쌍가락지」·「옥단춘아」·「베틀노래」·「시집살이」·「은잔한개」·「친정생각」·「부중[僧]」·「마누라붐[訃音]달거리」 등이 있으며, 남정네의 일노래로는 모심기노래·보리타작노래 등이 있다. 그리고 「각설이타령」·「방아타령」·「쾌지나칭칭」·「지신밟기」·「상엿소리」·「글자풀이」 등도 있다.

특히 향토색 짙은 노래로는 이 고을 형곡(荊谷)의 아낙네가 시집에서 버림을 받고 수절하다가 강물에 빠져들며 남겼다는 「산유화(山有花)」 한 곡조가 있으니,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긴가/하늘과 땅이야 비록 크지만/이 한몸 기대어 살 곳이 없네/차라리 이 물에 몸을 던지어/고기의 뱃속에 묻혀지리라.”하는 슬픈 노래이다.

그리고 근래의 것이라 볼 수 있는 「선산아리랑」이 인심과 세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아리아리아리 아라링요/아리아리랑고개서 놀다가세(이하동)/산천에 초목은 젊어가고 우리야 인생은 늙어간다/산중에 귀물은 머루다래 인간에 귀물은 갈보라네/논밭전지 쓸만한것 신장로되고/인물깨나 잘난년은 갈보된다/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마라/되지못한 촌갈보 몸꼴낸다/울넘어 담넘어 꼴비는 총각/눈치나 있거던 떡 받아라/떡을랑 받아서 팔매를 치고/두손목 잡고서 발발떤다/담넘어 갈때는 큰맘을 먹고/문고리 잡고서 발발떠네/문고리잡고서 떨지만 말고/큰마음 먹고서 문을 여소/남의집 하이칼라 자동차타고/우리집 저문둥이 콩밭골 가네.”라는 노래이다.

「마누라붐달거리」는 “저 양반의 거동보소 등너머다 첩을 두고/낮으로는 놀로 가고 밤으로는 자고오네/큰어마님 죽었다고 본댁에서 붐이 왔네/신던신을 손에 들고 바지말기 치겨들고/논뜰밭뜰 휘달라서 집에라고 찾아오니/문을 닫아 걸어놓고 명주전대 목에 매고/자는드시 죽었구나일/어나오 일어나오/임이왔소 일어나오/임그려서 죽은사람 약쓴다고 일어나리/바람불어 누은 남기 눈비온다 일어나리/앞산에다 집을지어 그 안에다 집어넣어 날면보고 들면 보자.”라는 노래이다. 이처럼 이 고장의 민요에서 열(烈)과 풍자와 사랑의 노래가 있다.

산업·교통

총경지면적은 1만 2126㏊로 그 중 논은 9,220㏊, 밭은 2,906㏊이다. 논과 밭의 비율이 약 7:3으로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지역에 안곡(安谷)저수지·대원(大院)저수지·금오산저수지·학서지 등이 주변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리고 경지정리와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낙동강 유역의 충적평야를 중심으로 경상북도의 곡창지역을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이외에도 땅콩·채소류·수박·인삼·사과·양송이 등의 경제작물 재배가 활발하다. 배·복숭아·포도·감·고추·마늘·오이·시금치·옥수수 등은 감소추세에 있는 반면 수박·참외·사과·호박·당근·가지·양파·배추·메밀·조·수수 등의 생산이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낙동강 연안에서 재배되는 질 좋은 땅콩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고아읍 괴평리·다식리와 해평면 문량리 앞들의 배추와 예강리 앞들의 무는 예로부터 서울·부산에서 이 곳 것이 아니면 즐기지 아니해 비싼 시세로 거래되기까지 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리하여 해마다 가을철 김장할 무렵이면 무·배추의 출하기(出荷期)로 각지(各地)에서 모여드는 상인들과 차량으로 일대 혼잡을 이룬다.

또한 조선시대부터 진공(進貢)해 유명한 도개(桃開: 多谷)인삼은 송도(松都)의 인삼재배법을 옮겨와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적중(的中)해 품질의 우수함이 송도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고아·선산 일부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삼의 해외수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농촌소득에 지대한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속주인 선산약주(善山藥酒)는 일명 송로주(松露酒)로 선산지방에서 500여 년 동안 이어져 오는 찹쌀·멥쌀·누룩으로 빚은 민속주이다. 엷은 황갈색에 감칠맛이 감돌며 달콤하다. 1983년 토속주(土俗酒)로 지정되었고 예로부터 특산물로 유명하였다.

도심지 주변에는 급격한 도시화와 교통망의 발달로 원예농업도 성하다. 축산은 한우·돼지·닭·산양·사슴 등이 사육되고 있다. 산림은 악산(惡山)이라 불릴 정도로 벌거숭이 산이었으나, 이제는 어느 산이나 토피(土皮)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르러져 가고 있다. 임상(林相)은, 2008년 현재 임목축적은 306만 5,919㎥이며 임산물생산량은 893만 8,463㎏으로 종실, 버섯, 산나물의 생산이 많다.

국가공업단지로는 1969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구미수출공업단지가 대표적이며, 섬유단지와 전자공업단지 등으로 4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한국전자공업의 메카로 불리며, 전자·섬유공업을 중심으로 기술집약화·전문화·계열화를 통한 신제품개발 및 수출진흥을 목적으로 조성된 우리나라 내륙 최대의 공업단지이다. 4 단지 총 면적 2만 2,283㎢에 입주업체는 771개사에 달하며 근로자만도 7만 7,307명으로 구미시 인구의 약 21%를 차지한다.

농공단지는 고아, 해평, 산동 등 모두 3단지로 33만 7천㎡의 면적에 모두 60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상업으로는 모두가 5일 정기장으로 『임원경제지』·『영남읍지』에 의하면 1830년경 군내에는 읍내장(邑內場)이 2·7일, 해평장이 4·8일, 두천장(杜川場)이 5·10일, 구미장(龜尾場)이 1·6일, 인동부내장(仁同府內場)이 2·7일, 대교장(大橋場) 등의 5일장이 개시되었으며, 여기에서는 곡물·무명·소·식염·해산물 등이 거래되었다. 대교장은 1920년대에 소멸되었고, 1970년에 와서는 각 읍면마다 하나씩 장이 개설되었으나 경부고속도로의 개통, 구미전자공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경제개발과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구가 급증하자 자연히 상설점포가 증가했고, 따라서 정기시장의 사회적·경제적 기능이 쇠퇴하게 되었다.

구미시는 대구광역시와 인접해 있으므로 상권이 대구광역시에 종속되어 도매상은 거의 없고 소매상과 중간상이 대부분으로, 자체 상권의 형성이 어려워 물가가 비싸고 공업단지의 경기에 따라 시장구매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편 2·7일 선산읍에서 열리는 선산장터에서는 땅콩·참깨·인삼·선산약주 등의 특산품과 엿·묵·손두부·칼국수 등의 전통음식을 살 수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전에는 주로 경부선철도에 의존했는데 1970년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구미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교통이 좋아졌다. 공업단지 외곽의 강변도로, 구미대교 등이 건설되어 인접지역과의 교통도 편리하며, 시 곳곳에 지방도와 시군도가 건설되어 있다.

관광

구릉성 산지가 널리 분포해 이름난 높은 산은 없으나, 낙동강이 시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고 있어 하천을 중심으로 하는 아름다운 자연적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명산 금오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천연의 명승관광지임과 동시에 우리나라 불교의 발상지로서 문화적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또한 우리나라 최대의 전자공업도시로서 산업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산업관광지로서의 구미공업단지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쪽에 섬유단지로 출발한 일반단지와 전자공업의 요지인 전자단지로 형성된 제1공업단지가 있고, 동쪽에는 반도체 및 컴퓨터단지인 제2공업단지(일명 인동공업단지)와 전자 관련 부품공장이 들어선 제3단지가 있는 전국 최대의 내륙공업단지이다.

금오산은 구미역에서 남서 약 8㎞ 지점에 솟아 있는 높이 977m의 명산으로, 1970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승지이며, 천혜의 요새를 이루어 신라시대부터 변경수호의 간성이 되어왔고, 임진왜란 때는 크게 활용되었다. 금오산도립공원에는 관광자원이 포장(包藏)되어 있으며, 관광호텔과 케이블카 등 관광시설도 잘 되어 있다. 도선굴과 높이 25m의 명금폭포 그리고 정상 북쪽 아래 거대한 암벽에 높이 5m쯤 되는 마애보살입상, 박희광동상(朴喜光銅像), 허위유허비(許蔿遺墟碑), 동락서원과 그 밖에 6·25 때 격전지인 낙동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충혼탑 등이 있으며 금오산 가는 길에 경관이 아름다운 보트장이 있다.

그리고 해평면과 도계면의 경계지역에 우뚝 솟은 냉산(冷山 일명 태조산, 692m) 중턱에 도리사가 있다. 이 절은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아도화상이 417년(눌지왕2)에 창건한 ‘해동 최초의 가람’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발상지이며, 경내에 화엄석탑(華嚴石塔)·금동육각사리합(金銅六角舍利盒)·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외에도 아도화상과 관련된 갖가지 유물과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7세기에 세운 아도화상 사적비를 비롯해 아도화상이 좌선을 했다는 좌선대와 황악산 직지사의 터를 가리켰다는 망대 서대(西坮)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밖에도 시내 도처에 대둔사(大芚寺)·수다사(水多寺) 등 불교유적이 많다. 고아읍 예강리낙동강변에 세워진 매학정은 조선 중종 때의 명필로 중국의 대서예가들이 왕희지 이후의 제1인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황기로선생의 유적지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도개면의 청화산 남쪽 기슭에 있는 주륵폭포(朱勒瀑布)는 4계절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이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피부병과 관절염에 특효가 있다 해 특히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동락유원지(東洛遊園地)가 조성되었고, 그 앞에는 제1공단과 인의동을 잇는 구미대교가 가설되어 낙동강 동안지역의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읍·면
  1. 고아읍(高牙邑)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63.82㎢, 인구 3만 3323명(2015년). 읍 소재지는 관심리였으나 2006년 9월문성리로 신축·이전하였다. 본래 선산군 지역으로 망장면(網障面)이라고 하여 예곡(禮谷)·강정(江亭)·관심(官心)·신화(新華)·오로(吾老) 등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성면의 항곡·모하·봉계·송림·다식 등 18개 리와 내서면의 봉산리를 병합해 옛 고아부곡(高牙部曲)의 이름을 따서 고아면이 되었으며, 1997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에는 다봉산(366m)·꺼먼재산(401m)·국사봉(國士峯, 319m)을 잇는 산지가 면계를 이루고, 그 북사면에 해당하는 구릉지가 전 면에 분산·분포해 봉화산(烽火山)·접성산(接聖山, 374m)·백마산(白馬山) 등이 솟아 있다. 북쪽 경계를 따라서는 감천이, 동쪽 경계를 따라서는 낙동강이 흐르며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낙동강·감천과 연접해 지질은 대개 사질토양(砂質土壤)으로 경지율이 비교적 높고, 수리시설이 양호해 군의 곡창을 이룬다.

총경지면적 21.12㎢로 33.1%, 임야면적 27.38㎢로 42.9%, 기타 24.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5.66㎢로 74.2%를 차지하고 밭이 5.46㎢로 25.8%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곡생산 외에도 맥류, 인삼, 수박, 참외, 방울토마토, 사과, 배추 등의 재배가 성하고, 한우·젖소·돼지·사슴·닭·토끼 등의 사육과 양봉이 행해진다. 대망리에서는 인삼재배가, 오로리에서는 누에치기가 이루어져 농가소득이 높은 편이다.

공업으로는 생사·견직공장 등 총 133개 기업체가 있으며, 구미공업단지의 영향으로 섬유 및 전자공업의 하청공장도 다수 있다. 도로는 고성∼선산간의 국도가 면을 남북으로 관통해 구미·성주 방면과 연결되며, 구미∼소보(召保)의 군도와 아포∼상주의 지방도가 통하고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망리에 경락서원(景洛書院), 봉한리에 남계서원(南溪書院)·죽림사, 원호리에 김취성의 강학당인 서산재가 있으며, 예강리에는 명필 황기로선생의 유적지인 매학정과 이진화(李晉和)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정려각이 있다. 또한 원호리는 선산김씨의 동족마을이다.

  1. 선산읍(善山邑)

시의 중앙에 위치한 읍. 현재 면적 67.01㎢, 인구 1만 4751명(2015년). 읍 소재지는 완전리이다. 본래 선산군의 군청 소재지로서 서내면(西內面)이라고 하여 죽지(竹枝)·사방(社坊)·원당(元堂) 등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내면의 교촌·역촌·조남 등 6개 리, 독동면의 신기·독동·원당 등 5개 리, 무래면의 내동·고압 등 5개 리, 고남면 일부, 개령군 고성면 일부를 병합해 선산면이 되었으며,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된 이후, 1983년옥성면의 봉곡리, 포상리와 금릉군 감문면의 소재리, 봉남리가 편입되어 현재 27개 리가 되었다. 이후 1995년 1월 1일자로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면서 구미시 선산읍으로 개편되었다.

지세는 대체로 동북으로부터 서로 향해 경사가 되었다. 북부는 형제봉(兄弟峰)을 정점으로 하는 구릉성 산지이며, 여기에서 발원한 단계천(丹溪川)이 읍의 서부를 관통해 감천에 흘러들고, 감천은 동류해 낙동강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22.90㎢로 34.2%, 임야면적 28.26㎢로 42.2%, 기타 23.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6.30㎢로 71.2%를 차지하고 밭이 6.60㎢로 28.8%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 생산이 많으며, 이외에도 수박, 참외, 포도 등의 재배가 활발하고, 특산물로 선산약주가 유명하다. 또한 한우·젖소·돼지·개·산양·닭 등의 사육도 많이 한다. 특히원리는 다각적 영농방법으로 소득이 높은 모범농촌이다.

공업은 현대시설을 갖춘 도정공장과 구미공업단지의 하청공장들이 있다. 도로는 헌산·구미·고성을 연결하는 국도가 읍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안계∼김천으로 연결되는 지방도가 읍의 서부를 지나기 때문에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교리에 선산향교, 죽림사지삼층석탑과 원리에 금오서원, 낙남사지삼층석탑이 있다. 완전리에 선산객사, 이문리에는 곳곳에 산재하던 비석들을 모아놓은 비석거리와 형제봉 아래에 원각사(圓覺寺)가 있다. 또한 죽장리에 국보인 통일신라시대의 오층석탑과 고려대에 별을 보고 제사를 지내던 제성단(祭星壇)이 있다.

  1. 산동읍(山東邑)

시의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59.33㎢, 인구 23,714(2019년 10월 현재). 읍소재지는 적림리이다. 본래 선산군 지역으로 베틀산의 바깥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산외면(山外面)으로 부르다가 1895년(고종 32)에 산동면으로 개칭해 웅현(熊峴)·보평(洑平)·광암(廣岩)·백곡(栢谷) 등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몽대면의 적림·쌍암·구미·질곡·용수 등 33개 리와 해평면 일부, 군위군 석본면 일부를 병합해 산동면이 되었다. 이후 1973년에 도산1,2리가 군위군 소보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 시군통합에 따라 통합 구미시에 편입되었으며 현재 16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2020년 산동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의 북부에는 베틀산을 중심으로 한 산릉이 가리우고 있고, 읍의 대부분은 시루봉(260m)·응봉(351m) 등 비교적 높은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에는 위천의 지류인 곡정천(谷亭川)이 북류하고, 남서부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한천(漢川)이 서류하면서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13.28㎢로 22.4%, 임야면적 26.74㎢로 62.0%, 기타 15.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08㎢로 68.4%를 차지하고 밭이 4.20㎢로 31.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미곡 이외에 채소류 등의 작물이 재배된다. 사과 ·포도 등의 과수재배와 잎담배재배도 활발하며, 개·산양 등이 사육된다. 특산물로는 금오산 메론, 인덕 참외, 산동 포도가 있다.

진해∼청주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고 대구·상주와 연결하며, 적림리에서 남쪽으로 난 적중∼해평간의 지방도가 왜관·구미로 통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인덕리에 효사정(孝思亭), 임천리에 돈봉재(遯峰齋)가 있다. 백현리에 영모당(永慕堂), 임천리에는 불동석불(佛洞石佛)이 있다.

  1. 도개면(挑開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0.9㎢, 인구 2,410명(2015년). 면 소재지는 궁기리이다. 본래 선산군에 속하는 도개부곡(道開部曲)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도개면(挑開面)이 되어 용산(龍山)·석현(石峴)·두암(斗巖)·신기(新基)·신평(新坪)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곡면의 재궁·원당·신기·신암·신평 등 19개 리와 비안군 내서면의 신촌과 단남면의 일부를 병합해 도개면이 되었고, 현재 15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의 서부에는 팔공산맥(八公山脈)의 지맥인 청화산(靑華山, 701m)·냉산(冷山, 692m)·장자봉(莊子峯, 422m) 등이 솟이 있고, 이를 연결하는 산릉이 동부의 위천(渭川)과 서부의 낙동강 양 하계의 분수령을 이룬다. 지세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열려 있으며 낙동강이 그 서경이 된다. 낙동강을 따라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도개천(挑開川)·신곡천(新谷川)·위천 등의 지류를 따라서도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2.54㎢로 20.6%, 임야면적 39.52㎢로 64.9%, 기타 14.5%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74㎢로 77.7%를 차지하고 밭이 2.80㎢로 22.3%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벼농사가 주업이고, 낙동강변에는 땅콩 재배가 성하며, 완초·마늘재배도 많이 한다. 한우·돼지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이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다곡리의 인삼이 유명하며 상품적 가치가 높고, 산간지역에는 약초재배와 임목축적량도 많다.

도로는 김천∼안계(安溪)간의 지방도와 모동(牟東)∼현서(縣西)간의 지방도가 남서부 면계를 따라 나 있을 뿐,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로망이 편리하게 정비되어 있는 편은 아니다.

문화유적은 월림리에 월암정, 도개리에 모원당(慕遠堂), 궁기리에 충렬당(忠烈堂)과 궁기동석불상이 있다. 신곡리의 문수사(文殊寺), 다곡리에는 피부병과 관절염에 특효가 있다는 다곡폭포(多谷瀑布)가 있다.

  1. 무을면(舞乙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67㎢, 인구 2,0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삼리이다. 본래 선산군 지역으로, 물골의 이름을 따서 무을동방(舞乙東方)이라 해 웅곡(熊谷)·백자(柏子)·천촌(川村)·송정(松亭)·원상(院上)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웅곡·원동·무이·송삼·무수 등 10개 리로 개편, 현재 18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대체로 동북쪽으로 가로 누운 장방형(長方形)의 지역이며 북에서 동으로 경사된 지세가 연악산(淵岳山)을 주맥으로 산악(山嶽)이 길게 지형을 따라 뻗고 있다. 북쪽은 수선산(修善山, 684m)·원통산·기양산, 남쪽은 광덕산(廣德山, 394m)·우태산(牛泰山, 452m)으로 둘러싸여 산지가 많으며, 면의 중앙부에는 감천의 지류인 대천(大川)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거의 직선상으로 흘러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12.54㎢로 28.1%, 임야면적 28.60㎢로 64.0%, 기타 7.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82㎢로 62.4%를 차지하고 밭이 3.47㎢로 37.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곡물생산을 주로 하며, 그 밖에 특기할 만한 작물은 없다. 젖소·사슴·개·토끼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산간지역으로서 용재생산이 많다. 도로는 구미에서 상주시 공성면을 잇는 모동∼현서간의 지방도가 면을 동서로 관통하며, 면의 남·북부에는 김천∼무을간의 군도와 낙동∼외남간의 군도가 지나 이 면과 김천·상주를 연결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무등리에 무동서원지, 상송리연악산(淵岳山)에 수다사(水多寺), 무이리에 무이재(武夷齋)가 있다. 송삼리에는 김보륜(金輔輪)의 효자정려각이 있으며 안곡리에는 김의덕을 추모해 지은 대덕재(大德齋)와 김광택(金光澤)의 효자각이 있다.

  1. 옥성면(玉成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65㎢, 인구 1,95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아리이다. 본래 선산군 지역으로 주아면(注兒面)이라 해 주아·초곡(草谷)·문정(文亭)·구평(九坪)·죽전(竹田)·옥성(玉城) 등 1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당면의 죽계·신촌·죽원·태봉 등 15개 리와 개령군 송곡면의 일부를 병합해 옥성면이 되었다. 1983년봉곡리, 포상리가 선산읍으로 편입되어 9개 리로 편성, 1995년에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 구미시 옥성면으로 개편되었고, 현재 16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북쪽은 삼봉산, 남쪽은 형제봉(兄弟峰)·원통산, 서쪽은 복우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부는 어구산(436m)이 솟아 있어 산지가 많은 편이다. 낙동강이 동쪽 면계를 따라 남류하며 그 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낙동강 연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산악지대가 많으며 서북에서 동남으로 향해 경사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1.00㎢로 16.5%, 임야면적 46.37㎢로 69.6%, 기타 13.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7.09㎢로 64.5%를 차지하고 밭이 3.91㎢로 35.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주곡 위주이나 경지율이 낮아 생산량은 적은 편이며, 농업 외에 젖소·돼지·사슴·닭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이 활발하고 낙동강 연안에서는 땅콩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 특산물은 쌀, 배, 표고버섯, 방울토마토, 토종꿀 등이다.

도로는 면의 서부에 아포∼상주간의 지방도가, 동부에 진해∼청주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해 이 면을 상주·선산·구미·대구와 연결하며, 이 사이에 덕촌∼주아간의 군도가 나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낙동강에 의해 분리된 시의 강동(江東)과 강서(江西)지역을 연결하는 일선교(一善橋)가 1976년에 준공되어 지역간 도로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옥관리에 경현사(景賢祠)와 대둔사(大芚寺)가 있는데 경내에는 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주아리에는 이로재(履露齋), 이곡리에는 창암정(滄巖亭)이 있다. 농소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450년의 은행나무와 삼렬사(三烈祠)가 있다.

  1. 장천면(長川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8.14㎢, 인구 3,59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장리이다. 본래 선산군 지역으로 북웅곡의 이름을 따서 북웅곡면이라 하다가 1895년(고종 32)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장천면이라 해 신점(新店)·신방(新坊)·석적(石積)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우·명곡·여남 등 9개 리로 개편하였다. 1987년에는 석우리가 칠곡군 가산면에 편입되었고, 이후 1989년칠곡군 가산면 신장리가 본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구미시와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장천면으로 개편되었고 현재 15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적라산(赤羅山, 352m)·응봉산(鷹峰山, 331m) 등이 면의 동쪽 경계에 솟아 있고, 이들로부터 파생된 구릉이 동서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어 준산간지역을 이룬다. 하천 및 그 지류가 이 산지간을 개석해 역시 동서 방향의 긴 침식곡을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9.76㎢로 16.8%, 임야면적 41.72㎢로 71.8%, 기타 11.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52㎢로 66.8%를 차지하고 밭이 3.24㎢로 33.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벼농사가 주업이나 생산량은 적은 편이며, 주곡 이외에 고추, 참외, 마늘, 수박 등의 특용작물 재배가 많다. 지형적 특색으로 인해 다른 지역에 비해 한우·사슴 등의 가축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남부 면계를 따라 진해∼청주간의 국도와 마산∼중강진간의 국도가 나 있어 이 면을 대구와 안동·상주·구미 등지와 연결, 교통상 위치가 양호하나 북부지역은 교통이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오로리에 미륵당유적(彌勒堂遺蹟)과 마애여래좌상, 천생산성(지방기념물, 1974년 지정)이 있다.

  1. 해평면(海平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21㎢, 인구 5,1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호리이다. 고려 중기까지 파징현(波澄縣)으로 불렸으며 고려 성종 때 해평현(海平縣)으로 개칭되었고, 조선 초기에는 인동현(仁同縣)에 예속되었다. 그 뒤 해평방(海平坊)·산내방(山內坊)으로 개칭되었다가 동촌(東村)·서촌(西村)·대도(大島) 등 2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내면의 주평·목계·수탕 등 17개 리와 몽대면의 일부를 병합해 해평면이 되었다. 이후 1988년선리가 신설되어 15개 리로 편성, 현재는 24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낮은 지형으로 낙동강이 서부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평천·송암천(松岩川)이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연안에 먹기들·방원들·밀리들·구름들·괴곡들·해평들 등의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고 수리시설의 역사가 깊다.

총경지면적 18.76㎢로 27.1%, 임야면적 37.00㎢로 53.5%, 기타 24.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13.16㎢로 70.2%를 차지하고 밭이 5.60㎢로 29.8%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평(海平)이라는 지역명처럼 넓고 비옥한 평양지로서 쌀농사 중심의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발전해왔으며, 특산물로서는 금오산청결미, 해평참외, 냉산수박, 해평땅콩 등이 있다. 한우사육이 다른 면에 비해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밖에 돼지·산양·닭의 사육과 양봉이 행하여진다. 그리고 해평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전자제조관련업 등 9여개 업체가 입주하여 있다.

도로는 진해∼청주의 국도가 낙동강을 따라 나 있어 상주·대구 방면과 연결하며, 구미∼소보간의 군도가 남동부를 통과하고 있으며, 구미4공단 조성과 국도25호선의 확충 등 교통망이 완료되면 보다 편리한 교통 조건을 갖출 수 있다.

문화유적은 낙산리에 삼층석탑과 최성학씨 가옥, 낙성리에 낙봉서원이 있다. 송곡리의 냉산에는 도리사(桃李寺)·냉산성(冷山城)·금수굴(金水窟)이 있다. 도리사에는 화엄석탑(華嚴石塔)을 비롯해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월곡리·낙산리에는 고분군이 산재해 있으며, 낙산리는 삼층석탑, 해평리에는 보천사와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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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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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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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경상북도사』(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구미시, 1982)
『하천』(건설부, 1979)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경북향토지』(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72)
구미시(www.gumi.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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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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