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영조 6)에 지방유림이 박상충(朴尙衷) · 이성중(李誠中) · 박은(朴訔) · 송유저(宋有著) · 임사수(林士壽) · 박소(朴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77년(정조 1)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98년에 유림과 후손에 의하여 중건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이듬해 유허비(遺墟碑)를 세우고 백산단(柏山壇)이라 명명하였다.
1904년에 구호단(龜湖壇)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박종열(朴宗說) · 임치우(林致愚) · 유기섭(柳基燮) 등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970년에 복원과 아울러 구호서원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4칸의 백산재(柏山齋), 내신문(內神門) · 모현문(慕賢門) · 협문(夾門) · 입덕문(入德門)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박상충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박은 · 임사수 · 박종열 · 유기섭, 왼쪽에는 이성중 · 성유저 · 박소 · 임치우의 순으로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백산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을 토론하는 곳이다. 유물로는 50여권의 문헌이 있으며 매년 2월 중해(中亥 : 두번째 亥日)와 8월 중해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며, 재산으로는 전답 5천여 평과 대지 6백여 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