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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면(金圭冕)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대한의용군사회의 위원장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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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대한의용군사회의 위원장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이명은 백추(白秋). 함경북도 경흥 출신.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어린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만주지방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애국계몽운동에 가담하였다가 19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이 곳에서 이동휘(李東輝)·박진순(朴鎭淳)·김립(金立) 등 30여 명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참가하였다. 그 뒤 이동휘계의 군사지도자 이용(李鏞)과 손을 잡고 시베리아의 한인군사조직을 상해임시정부 산하에 규합하는 데 힘쓰게 되었다.
1921년 6월 세칭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이 발생하기 직전 5월 18일 오하묵(吳夏默)의 특무대에 붙잡혔다. 이 때에 같이 붙잡힌 사람으로는 한운룡(韓雲龍)·박원섭(朴元燮)·우시욱(禹時旭)·주영섭(朱英涉)·안태국(安泰國)·임상춘(林常春) 등이다.
당시 오하묵은 이른바 이르쿠츠크집단의 요인으로서 고려혁명군정의회(高麗革命軍政議會)의 부사령관이었다. 김규면이 소지한 상자에는 3만여 원의 금은전(金銀錢)과 비밀문서가 들어 있었다.
그 뒤 처형을 면하여 이용과 함께 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의 위원장이 되었다. 볼셰비키는 아니고, 다만 적군편에 들어 한국독립의 무장투쟁에 일생을 바쳤던 민족독립운동자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일제하 극동시베리아의 한인사 회주의자들』 ( 마뜨베이찌모피예비치김 저,이준형 역,역사비평사,1990)

  • 한국공산주의운동사  (김준엽 · 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7)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7년)
김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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