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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정(金武亭)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팔로군 포병단 단장, 조선의용군 총사령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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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팔로군 포병단 단장, 조선의용군 총사령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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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자는 명석(明石). 본명은 김병희(金炳禧)이고 별명은 김무정(金武亭)이다. 함경북도 경성 출생.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서울에 와서 생활하다 14세 때 3·1운동에 참여하였다. 잠시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다녔으나 1923년 중퇴하고, 같은 해 3월 중국으로 건너가 1924년 중국 바오딩군관학교[保定軍官學校: 강무당 포병과]에 입교, 같은 해 졸업하고 임관하였다. 1925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상하이[上海]에서 중국 공산당 조선인지부에서 활동하였다.
국공분열 후에는 루이진[瑞金]의 중국 노농홍군에 입대, 1934년 10월부터 전개된 2만 5000리 대장정에 참여하였다. 1937년 8월 노농홍군이 중국 국민혁명군 제팔로군으로 이름이 바뀔 때 총부 작전과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1월 제팔로군 최초로 창건된 포병단(병력 1,000여 명)의 단장이 되었다. 제팔로군이 화북 일본군에 대공세를 퍼부었던 1940년 봄 백단대전(百團大戰)에 포병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그 뒤 주로 조선인 민족간부 양성에 주력하여 화북조선청년연합회(1941년 1월 太行山 속에서 결성) 조직을 주도, 회장에 취임했으며, 1942년 7월에 조직된 조선의용군 총사령이 되었다. 그 해 말 타이항산에서 화북조선혁명군사학교를 창설, 조선 청년들을 교육하였다.
광복 후 김두봉(金枓奉) 등과 함께 개인 자격으로 북한으로 입국,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 같은 해 7월 북조선노동당 제2비서와 보안간부훈련대대부(사령관 崔庸健)의 포병담당 부사령관, 1948년 3월 조선노동당 제2차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각각 선출되었다. 6·25 초기에는 제2군단장으로 출전했고, 인민군 후퇴시에는 수도(평양)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950년 12월 4일 만포 별오리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정기대회에서 불법살인·명령불복종죄로 규탄받고 강등, 인민군 수인(囚人)부대 연대장이 되어 평양 모란봉극장을 지하에 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종사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요구로 중국으로 인도되었으나 1951년 7월경 병으로 죽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조선의용군사령원 무정장군』(결전,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편집위원회,민족출판사,북경,1991)

  • 한국공산주의운동사  (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6)

  • 북한전서  (극동문제연구소, 1974)

  • 『무정일대기』(신천지,1946.3)

  • 「民族運動史上の人物-武亭-」(朝鮮民族運動史硏究會,『朝鮮民族運動史硏究』 2,198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7년)
염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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