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순창에서 출생하였고 순창읍 복실리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집안에 전승되는 동편제(東便制) 소리를 익혔고, 고창의 신재효(申在孝)에게 판소리의 이론적인 지도를 받았다. 학식이 높고 판소리를 학문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판소리이론에서는 첫 손꼽는 명창이었다.
그의 판소리이론 중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판소리 발림을 극적인 내용과 같게 해야 하며, 얼굴 표정과 몸의 모든 동작이 극적인 내용 및 음악과 맞아야 한다. 둘째, 음악은 사설(辭說)의 극적인 내용과 융합되어야 한다.
셋째, 한가한 장면에서는 느린 장단을 쓰고, 긴박한 장면에는 빠른 장단을 쓰며, 슬픈 장면에는 계면조(界面調)를 쓰고, 웅장한 장면에는 우조(羽調)를 써서 조와 장단이 판소리 사설의 극적인 내용과 융합되어 구성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사의 뜻에 따라 선율 또한 일치되어야 한다. 넷째, 어단성장(語短聲長)이라 하여 가사는 짧게 붙이고, 소리는 길게 부른다.
그의 이러한 판소리이론은 오늘날 판소리의 일반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의 「춘향가」는 김찬업(金贊業) · 정응민(鄭應珉)을 통해 정권진(鄭權鎭)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는 특히 「춘향가」를 잘 불렀고, 「춘향가」 중 ‘천자풀이’는 그 당시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그의 이론은 송만갑(宋萬甲) · 전도성(全道成)에 의해 방창(倣唱)되어 오늘에 전한다.
이 밖에도 그의 지도를 받은 명창으로는 장자백(張子伯) · 유성준(劉聖俊) · 이동백(李東伯) · 이선유(李善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