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대래(大來). 호는 무척와(無慽窩). 아버지는 노언상(盧彦相),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 임강(任矼)의 딸이다. 이재(李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5년(영조 1)에 32세로 전강(殿講)에 급제하여 이듬 해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가 부사정(副司正)에 승진되었으나 그만두고 예학에 전념하였다. 이후에도 오수찰방(獒樹察訪)·예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禮曹正郞兼春秋館記注官)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바로 사직하고 학문에 힘썼다.
41세 때에는 전적(典籍)으로 승진되어 입시하여 일곱 가지 주요한 일을 개진하기도 하였는데 학교를 일으킬 것, 인륜(人倫)을 밝힐 것, 효제(孝悌)를 습속화 할 것 등이 주 내용이었으며, 학문의 경향은 철저하게 예학 일변도였으니 그의 문집에 나오는 잡저(雜著)나 논(論)도 예를 실행하는 한 방법으로 다루어졌는데 비교적 논리가 정연하고 생각이 참신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당시 피폐되어 가는 예에 대한 비판이나 거기에 제시된 방법들은 퍽 유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저서로는 『무척와집(無慽窩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