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중종 29)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구(金坵)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김여우(金汝盂) · 최수손(崔秀孫) · 성중엄(成重淹) · 최필성(崔弼成)을 추가배향하였으며, 1718년(숙종 44) 김석홍(金錫弘), 그 뒤 홍익한(洪翼漢) · 김계(金啓)를, 순조 때에 김해(金垓)를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으며, 지금은 유허지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