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헌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최희정(崔希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산(書山)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0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함과 동시에 동죽서원으로 개칭하고 조광조(趙光祖)를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4칸의 강수재(講修齋), 내삼문(內三門)인 정의문(正義門), 외신문(外神門)인 입덕문(入德門), 홍살문, 3칸의 직사(直舍) 등이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최희정과 조광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수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회합 및 학문을 강론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中丁:두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으로는 『고운집(孤雲集)』 1책 이외에 30여종 50여책이 있다. 재산으로는 대지와 전답 700여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