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염불암 마애여래 좌상 및 보살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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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염불암 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중 보살좌상 정면
대구 동화사 염불암 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 중 보살좌상 정면
조각
유적
문화재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조성된 높이 1.06m의 마애불. 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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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조성된 높이 1.06m의 마애불.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2구.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여래좌상 4m, 보살좌상 4.5m. 염불암 경내에 우뚝 솟은 암석의 서·남면에 얕게 부조되었으며, 서면의 여래좌상은 아미타불(阿彌陀佛), 남면의 보살좌상은 관음보살(觀音菩薩)로 추정된다.

아미타불좌상은 선각(線刻)에 가깝게 부조되었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육계(肉髻)는 작은 편이다. 네모진 비만형의 얼굴은 치켜 올라간 긴 눈과 두툼한 코, 얇은 입술로 인하여 숭고미(崇高美)를 잃고 있다.

당당하게 조형된 동체(胴體)는 앉은 높이에 비하여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얇은 법의(法衣)는 단절된 몇 겹의 의문(衣文 : 옷자락 무늬)으로 주름져 있다. 특히 왼팔과 상체 사이의 여백에도 중첩된 쐐기형의 옷주름을 선각하였는데, 이는 독립된 원각상(圓刻像)을 모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로 보인다.

두 손은 무릎 위로 모아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서로의 엄지를 마주 대며, 검지를 꾸부려 손가락 등을 맞닿게 하는 아미타불의 미타정인(彌陀定印)을 맺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법의 자락은 세 겹의 횡적인 옷주름으로 마무리되었다. 2중의 연꽃잎으로 구성된 대좌 밑으로 구름무늬를 새겨 천상계(天上界)를 표현하였다.

회화성이 짙은 각선(刻線)을 보여 주는 관음보살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하지만 착의법(着衣法)은 상의[天衣]와 하의[裙衣]를 걸치는 일반적인 보살 옷과는 달리 우견편단으로 입혀진 법의 모양이어서 주목된다. 이러한 복장은 백의관음(白衣觀音)을 표현하려는 의도로도 보이나 보살상의 복장으로서는 이례적이다.

머리 위의 보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 면에 인동문(忍冬文)을 새겼으며 그 하부에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을 배열하였다. 보관 밑에는 나발(螺髮)의 머리가 이마 위에 돌려져 있다. 네모진 비만형의 얼굴 크기에 비하여 이목구비는 작게 표현되었다. 입과 코가 맞붙어 둔중한 인상을 풍긴다. 목은 거의 생략된 채 가슴 언저리에 삼도(三道)가 선각되어 있다.

좁은 어깨 폭으로 인하여 동체는 위축되었다. 법의의 옷주름은 왼쪽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하체에 이르고 있으나 활력을 잃고 있다. 두 손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두 손목에는 꽃잎이 새겨진 팔찌를 끼었다. 오른팔 상반부에는 영락과 꽃잎이 장식된 팔찌[腕釧]를 끼고 그 왼쪽 면에는 이를 묶은 두 줄의 장식고리끈이 늘어져 있다. 대좌는 아미타불의 대좌와 동일한 꽃잎 내부에 다시 화려한 꽃무늬가 선각된 2주의 앙련좌(仰蓮座)로 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당당한 체구의 아미타불에 비하여 섬약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네모진 비만형의 얼굴과 둔중한 표정, 형식화된 옷주름과 대좌의 형식 등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 주며, 조성 시기는 고려 전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팔공산염불암」(정영호, 『고고미술』 7, 1961)
집필자
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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