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구(稚久). 민기(閔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며,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의령남씨(宜寧南氏)로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을 아내로 맞아 호조정랑 남재수(南在洙) 등 5남을 두었다.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69년(현종 10) 20세에 진사가 된 뒤, 곧 벼슬길에 나가 현령(縣令)을 지내던 1686년(숙종 12)에야 비로소 별시 문과에 장원하였다.
할아버지 민광훈(閔光勳)과 아버지에 이어 3대가 계속 장원하였으므로 세상에서는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었다. 장원하자 규례에 따라 당상관(堂上官)으로 승진되어 승정원승지에 임명되었고, 이어 예조참판·승정원도승지를 거쳐 1696년(숙종 22)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1700년 의정부우의정에 오르면서 죽기까지 형조판서·의정부우참찬·사헌부대사헌·호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군국(軍國)의 중무(重務)를 맡았다. 성품이 화후(和厚)하여 사림(士林)과의 마찰이 없었고, 효행이 뛰어나서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