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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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후기 충혜왕(忠惠王)이 사사로이 설치한 재정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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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 충혜왕(忠惠王)이 사사로이 설치한 재정기관.
내용

심양왕(瀋陽王)일파의 모략으로 정사에 뜻을 잃은 충숙왕(忠肅王)은 1330년충혜왕에게 양위하였으나, 충혜왕은 경박하여 다시 폐립되고 충숙왕이 복위하였다.

이에 충혜왕은 원나라와 고려를 오가며 더욱 사치와 향락에 빠졌으며, 그 비용을 마련코자 1339년(충숙왕 복위 8) 보흥고(寶興庫)를 설치하였다. 이듬해 충혜왕이 복위하자 1343년 유비창(有備倉)을 보흥고에 병합하여 그 기구를 확대하고, 모리와 수탈로써 많은 민전(民田)을 불법으로 귀속시켰다.

이를 기화로 중간의 협잡배들이 발호하여 원성이 크게 일어 충혜왕도 왕위에서 물러나고,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하여 약탈한 토지와 노비를 본래의 주민에게 돌려주고 보흥고도 혁파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최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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