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년(숙종 3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노수신(盧守愼)·심희수(沈喜壽)·성윤해(成允諧)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김홍미(金弘微)·조우인(曺友仁)·정호선(丁好善)·황익재(黃翼再) 등을 추가 배향하였다. 1771년과 1841년에 중수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83년 4월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4칸의 강당, 5칸의 재소(齋所), 4칸의 고사(庫舍)와 봉산지부도신도비(鳳山池浮島神道碑)·봉산지 사적비(鳳山池史蹟碑)·하마비(下馬碑) 등이 있다. 사우에는 노수신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심희수·성윤해·김홍미·조우인·정호선·황익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등에 사용되며, 재소도 강당과 같은 형태로 되어 향사 때에 제관과 유생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향사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두는 곳이며 고자들이 거처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원내에는 연못이 있는데 그 중앙에 있는 섬을 봉산지부도라 하며, 신도비는 허목(許穆)이 노수신에 관하여 지은 것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해(中亥 : 두 번째 亥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유물로는 5현상(五賢像)·십청헌시첩(十靑軒詩帖)·기로연도(耆老宴圖) 등이 소장되어 있으며, 문헌으로는『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 등 약간 권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1,500평, 봉산지 2,800평, 대지 1,0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