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며, 산성 내에 있다고 하여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685년(신문왕 5)에 남원 소경(小京)이 설치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창건되었으며, 이곳에 용천(龍泉)이 있다고 하여 용천사(龍泉寺)라 하였다.
선국사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절이 교룡산성 내에서 국태민안과 전승을 기원하는 도량의 소임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사명을 바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의 건물은 교룡산성을 지키는 군 본부로 사용되어 수성장과 별장(別將)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특히 동학란 때에는 동학군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일대 접전을 벌였는데, 이때 사찰의 당우 가운데 일부와, 열섬들이의 장독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1917년에 현암(玄巖)이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선국사 대웅전을 비롯하여 칠성각 · 요사채 · 보제루 등이 있는데, 그 가운데 보제루는 군사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문화재로는 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대북과 198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교룡산성승장동인’이라고 새겨진 철인(鐵印)이 있다.
이 도장은 1960년 보월(寶月)이 보제루 마루 밑에서 발견한 것으로, 산성 별장이 동학군에게 성을 빼앗길 때 빠뜨리고 간 것이다. 절 밑 산곡리에서 생산되는 닭은 예로부터 진상 닭으로 이름나 있고, 이백면은 초동 쌀과 송동면의 세동쌀, 관왕묘의 미나리는 모두 진상품으로 지정되었으며, 절 일대에서 만들었던 산성 엿은 지금도 산곡리의 특산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