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申瀏, 1619∼1680)는 무신으로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1646년(인조 24)에 무과에 급제하고 1658년(효종 9) 함경북도 병마우후(兵馬虞候)로 있을 때 청나라의 요청을 받아 영장(領將)으로서 조총군(鳥銃軍) 200여 명을 인솔하고 나선정벌(羅禪征伐)에 참여하였다.
이때 흑룡강(黑龍江) 부근에 침입한 러시아의 지휘관 스테파노프(Stepanov)이하 270여 명을 전멸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원정(遠征)의 전말(顚末)은 『북정일기(北征日記)』에 기록되어 전한다.
유적 경내는 정문인 북정문(北征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는 존성재(存誠齋), 우측에는 신도비와 비각이 있으며, 둥앙 안쪽으로 내삼문인 선위문(宣威門)과 함께 사당인 숭무사(崇武祠)가 있다. 1980년에 부지 1,000평을 매입하여 기존 건물 3동(존성재, 삼문, 관리사)을 해체한 다음, 숭무사와 외삼문, 비각을 신축하고 존성재를 복원하여 주위를 정비하였다.
한편 경내 왼쪽 담장 밖에는 정평부사(定平府使)를 지낸 신한(申瀚)의 기적비(紀蹟碑)가 세워져 있는데 근래 건립한 것이다. 유적 뒤편의 선석산(禪石山)에 신유 장군의 묘소가 있다.
비각안에는 2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좌측 비석은 한국전쟁으로 파손되었고, 우측의 비석은 현대에 들어 새로 복원한 것이다. 본래 비문은 이현일(李玄逸)이 지었고, 전액은 이동적이 썼으며, 음기는 이재익이 썼다. 복원된 비의 글씨는 이상건이 썼다.
묘소는 숭무사 뒤편 200m 지점에 정부인(貞夫人) 문화류씨(文化柳氏)와의 합장묘로 조성되어 있고, 그 아래 정부인 남양홍씨(南陽洪氏)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