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 영의정 심온(沈溫)의 5대손이며, 심미(沈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광종(沈光宗)이고, 아버지는 경력(經歷) 심의검(沈義儉)이며, 어머니는 우참찬 신광한(申光漢)의 딸이다.
유학(幼學)으로 1572년(선조 5) 춘당대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正字)·박사·수찬(修撰)을 지내고, 1584년 지평(持平)에 이르렀다. 이 때 동서의 붕당이 생기려 하자, 언관으로서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으며, 이어서 사인(舍人)·사간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덕(輔德)으로서 근왕병 모집에 힘썼다. 그 공로로 왕의 신임을 받아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지내며 승정원에서 왕을 가까이에서 호종하였다. 왜군의 기세가 심해지면서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에서 다시 의주로 수행하였다. 같은 해 9월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서울 수복작전을 계획하였다.
도성민과 내응하며 삭녕(朔寧)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 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왜군은 심대의 수급(首級)을 참하여 서울 거리에 전시하였는데, 60일이 지나도 마치 산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청원군(靑原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