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장령, 교리, 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희용(希容)
효창노인(曉窓老人)
이칭
우송(友松)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97년(연산군 3)
사망 연도
1574년(선조 7)
본관
청송(靑松)
주요 관직
장령|교리|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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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장령, 교리, 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희용(希容), 호는 효창노인(曉窓老人)·우송(友松).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원(沈湲)이고, 아버지는 사인(舍人) 심순문(沈順門)이다.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 감찰 신영석(申永錫)의 딸이다. 영의정 심연원(沈連源)과 좌의정 심통원(沈通源)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는 악동들과 어울려 놀기를 즐겼으나, 나이가 들면서 깨닫고 공부에 힘써 20세에 성균관에서 학문을 익혔다.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가 되어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을 겸하였다.

이듬해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발탁되어 사과(司果)에 제수되었다. 그 뒤 정언(正言)을 거쳐 인종이 즉위하자, 헌납(獻納)이 되어 경연에서 기묘사화 때 억울하게 처단된 조광조(趙光祖)의 신원을 진언하였다.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小尹)의 편에 서서 대윤(大尹)의 거두인 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을 탄핵, 숙청하였다.

이어서 장령(掌令)·교리(校理)·사간·사예(司藝)·전한(典翰) 등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553년(명종 8) 승정원에 들어가 왕의 측근에서 오랫동안 보필하였다. 그 뒤 예조참의·동지돈녕부사를 역임하다가 노환으로 사임하였다. 음률(音律)·의술(醫術)·서법(書法)에도 밝았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소재집(蘇齋集)』
『율곡전집(栗谷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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