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초명은 안정(安定). 고려 말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정당문학 안원숭(安元崇)이다.
1374년(공민왕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공조전서를 지냈다.
1390년(공양왕 2) 국왕이 천도하려고 하자 이는 술사(術士)들의 망령된 행위라고 반대하여 중지시켰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이라는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건국 후에는 정치 참여를 거부하니, 이로써 반대파의 사람들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강제로 구도(舊都)의 관리를 맡기니 유후(留後)의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그 뒤 태조가 형조전서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태종이 즉위하여 몸소 찾아가 간청하여 벼슬에 나아가니, 1401년(태종 1)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건너가서 『대학연의(大學衍義)』·『통감집람(通鑑集覽)』 등의 서책을 구해왔다.
그 뒤 1404년 경상도도관찰사를 지냈다. 1407년에는 사헌부대사헌이 되어 태종의 밀명을 받고, 외척으로서 횡포를 부리던 민무구(閔無咎) 형제를 탄핵하여 외방으로 유배시켰다. 이어서 판한성부사·개성유후를 역임하고 병사하였다. 위인이 근면성실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였다. 시호는 경질(景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