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산(公山). 선조가 향리(鄕吏)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관리의 직무에 밝아, 공민왕 때에는 여러 주군(州郡)의 수령을 역임하며, 그 공적이 뛰어났다. 우왕 때에는 밀직부사·문하평리를 역임하였다. 이 때에 권문세가들에게 이성계(李成桂)를 적극 옹호하여, 뒤에 이성계로부터 크게 신임을 얻었다.
1386년(우왕 12)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수완을 보이고 돌아왔다. 이어서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조선 왕조가 창업하자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국정에 참여하였다.
1396년 겨울, 다시 명나라에 건너가 당시 불편하였던 양국관계를 해소시키는 데 힘쓰고 이듬해 돌아왔다. 그 뒤 찬성사를 역임하였는데, 성품이 강직하여 공무집행에 철저하였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