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자연지리
개념
1년의 사계절 중 두 번째인 봄과 가을 사이의 계절.
정의
1년의 사계절 중 두 번째인 봄과 가을 사이의 계절.
기후

기상학적으로는 보통 6·7·8월(음력 4·5·6월)을 여름이라고 하나 천문학적으로는 하지(6월 22일경)부터 추분(9월 23일경)까지를 말하고, 24절기상으로는 입하(5월 6일경)에서 입추(8월 8일경)까지를 말한다.

자연 계절 또는 기상·기후학적 계절로는 대체로 일평균기온이 20∼25℃이고 일최고기온이 25℃ 이상인 초여름, 일평균기온이 20∼25℃이고 일최고기온이 25℃ 이상이며 강수량이 집중되는 장마, 일평균기온이 25℃ 이상이고 일최고기온이 30℃ 이상인 한여름, 일평균기온이 20∼25℃이고 일최고기온이 25℃ 이상인 늦여름으로 세분된다. 이 기간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6월로 들어서면 태양의 고도가 높아져 일사가 강해지며, 하지까지 낮이 점점 길어져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 그리하여 일최고기온은 25℃ 이상을 나타내며 6월 하순에는 30℃를 넘는 일도 있다.

봄철까지 남아 있던 시베리아 고기압은 완전히 쇠퇴하고, 남쪽으로부터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다가와 겨울과는 반대의 기압 배치를 나타낸다.

한편, 오호츠크해를 중심으로 발달한 고기압이 서쪽으로 뻗어 우리 나라 부근까지 확장한다. 한랭다습한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온난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에는 양자강 유역에서 일본 열도 남해안을 따라 동서로 긴 전선대가 형성된다.

이 정체성의 전선이 장마 전선이다. 이 장마 전선의 남북에는 북태평양 고기압과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위치하여 양측 고기압의 세력에 따라 장마 전선은 남북으로 움직인다. 또 상층에는 두 갈래의 제트류(jet stream)가 흐르고 있으며 그 중 하나는 우리 나라 남쪽을, 또 하나는 북쪽을 흐르고 있다. 이들 두 제트류 중 남쪽 것이 강해지면 강수량이 증가되고 또 이 제트류의 위치가 북상하면 장마는 끝난다.

장마는 6월 초부터 2, 3일씩 지속되다가 6월 하순경에 본격적인 장마철이 된다. 장마철은 남쪽이 빠르고 북쪽으로 갈수록 늦어진다. 장마철에는 날씨가 불순하여 구름량이 많고 일조율(日照率)도 낮아서 기온이 약간 저하된다. 장마 기간에는 많은 비가 오기 때문에 6·7·8월 3개월의 강수량은 연강수량의 45∼60%를 차지한다. 따라서 1년 총강수량의 반 이상이 여름에 내린다.

특히, 7월은 우기 중의 우기로 집중 호우가 쏟아져 홍수를 일으킨다. 집중 호우의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1일 강수량이 연강수량의 10% 이상일 때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 동안에 연 총강수량의 몇 분의 1에 해당하는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1시간에 100㎜를 넘는 비가 내리기도 한다.

1일 강수량이 300㎜를 넘는 경우도 많아 지금까지의 1일 최대 강수량 기록은 장흥 547.4㎜(1981.9.2.), 고흥 487.1㎜(1981.9.2.), 광주(경기도) 485.5㎜(1920.8.1.), 대천 482.0㎜(1981.8.2.) 등이 있고, 1시간 최대 강수량 기록은 서울 118. 6㎜(1942.8.5.), 전주 109.6㎜(1951.5.26.), 제주 105.0㎜(1927.9.11.) 등이 있다.

지루한 장마철은 장마 전선의 이동에 따라 호천일(好天日)도 끼어 생활하기 쉬울 때도 있다. 이때를 장마 휴식 기간이라 한다. 장마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해져 우리 나라를 뒤덮게 된다. 이때가 한여름(盛夏)으로 7월 하순에서 8월 상순에 걸쳐 나타난다. 이때는 일최고기온이 30℃를 넘는 삼복(三伏)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한여름의 기온은 밤이 되어도 25℃를 넘어 잠을 설치는 여름밤이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열대야(熱帶夜)의 현상이다. 1961년에서 1980년 사이에 열대야의 출현 횟수를 보면 서울 86회, 대구 175회, 전주 192회, 광주 165회로 남부 내륙 지방에 많았다. 연도로는 1967년에 가장 많았고 1980년에 가장 적었다.

또 한여름의 혹서(酷署)는 40℃를 넘는 최고 기온을 기록한다. 지금까지 가장 고온이었던 기록은 대구에서 40.0℃(1942.8.1.)였으며, 다음이 원산 39.6℃(1906.7.20.)의 기록이 있다. 1983년 여름 더위는 울산이 38.6℃(1983.8.3.)를 기록하여 1931년 측후소 개설 이래 52년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워, 대구가 기록하였던 고극기온(高極氣溫)에 육박하였다. 그러나 간이 관측소에 의한 기록에서는 최고 기온 40℃를 넘는 예가 많다.

한여름에는 강수량이 비교적 적어 여름 장마와 가을 장마 사이의 소건계(小乾季)를 이룬다. 일사가 강해 높은 구름이 끼고 오후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한다. 더위가 멈춘다는 처서(處署)를 지나면 아침 저녁 서늘해지는 늦여름[晩夏]의 계절이 된다.

이 때가 되면 한반도를 뒤덮던 북태평양 고기압은 그 세력이 약화되고, 북상하였던 장마 전선이 다시 남하하면서 가을 장마가 시작되면 여름은 끝난다.

동·식물

여름은 푸른 계절이다. 흔히 녹음방초의 시절이라 말해 왔지만 1년 중 가장 많은 꽃들이 피는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에 피는 꽃은 대개가 흰색이다.

아카시아·밤나무·산딸나무·층층나무·조팝나무·노각나무·치자나무·함박꽃나무·으아리·나무딸기 등이 대부분 흰색이다. 흰색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생태학적인 면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숲과 풀밭을 보면 수많은 꽃들이 여름에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봄부터 연달아 긴 시일 동안에 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짧은 동안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달래가 봄의 꽃이라면 철쭉은 초여름의 꽃으로 꼽힌다. 잎이 피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철쭉은 신라의 향가 <헌화가 獻花歌>에서도 인용될 정도로 우리 민족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꽃이다.

모란과 작약은 흔히 뜰에 심었다. 모란의 화사하고 아름다운 자태는 왕성한 여름의 생리에 어울린다.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 그림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작약은 함박꽃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깊은 산속에서 자라며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치자꽃은 여름의 청신감을 더해주는 꽃이다. 선명한 광택과 푸른 잎의 꽃의 자태는 맑은 향기와 더불어 여름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여름의 초저녁을 밝게 비춰 주는 흰 치자꽃은 잊을 수 없는 꽃으로, 여섯 개의 꽃잎을 눈[雪]에 비유하여 치자꽃이 음(陰)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치자는 상록수이나 민간에서는 흔히 분재로 기른다.

창포는 단오날 행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대단히 아름다운 꽃이다. 단오날 창포를 삶아서 머리를 감으면 숱이 많아지고 윤이 난다고 하여, 창포 뿌리를 비녀로 만들어 꽂거나 동곳(상투가 풀어지지 않게 꽂는 물건)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습속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집집마다 뜰 안의 구석구석에 창포를 심었다.

목련의 일종인 함박꽃나무의 꽃은 꽃 대궁이 깊고 고개를 숙여서 피는 모습이 무척 호젓한 느낌을 준다. 일반 목련은 화량(花量)이 많으나 함박꽃나무는 그렇지 못하고 큼직한 잎 사이사이에서 핀다. 봄이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계절이라면 함박꽃나무는 초여름의 차분하고 은은한 맛을 자아내는 꽃이다.

함박꽃나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꽃으로 노각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우리 나라 남쪽 지방에 흔하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높게 자라는 나무이다. 꽃은 동백나무꽃을 닮았으며 색깔이 희고 우아하다.

여름의 산길을 걷다보면 숲 속이나 땅위에 노각나무의 꽃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꽃 역시 호젓한 산 속의 은은한 맛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라쌍수(沙羅雙樹)가 이것인데 부처님의 열반에 관계되는 꽃이다.

산기슭 또는 산허리 쪽에 드문드문 나는 꽃나무로서 층층나무와 산딸나무가 있다. 두 수종은 모두 같은 속에 속한다. 층층나무에 꽃이 필 때에는 산허리에 걸린 폭포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화량이 많고 풍성하여 온 나무를 덮는다. 산딸나무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산딸나무는 층층나무처럼 흔하지 못한 편이다.

이들 나무의 꽃은 여름철의 신호처럼 다가온다. 꽃이 풍겨주는 깨끗함은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신부의 웨딩 드레스와 같은 청신함을 준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밤나무가 많이 심어졌다. 초여름 밤나무 곁을 지나가면 독특한 밤나무 꽃 냄새가 난다. 지난 날 감나무·밤나무·호두나무·대추나무 등은 우리 민족의 과실나무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밤나무꽃 향기는 낯익은 향기이다.

아카시아나무는 자생적인 수종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 나라 전역에 심어져 여름을 장식해주고 있다. 아카시아나무는 꽃에서 꿀이 많이 나오기에 많은 꿀벌들이 찾는다. 그 꿀은 아카시아꿀·밤꿀이라 하여 널리 애용된다.

배롱나무의 꽃은 여름 동안 백 날 계속해 핀다고 하여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나 들어온 지 오래되어 큰 나무가 곳곳에 있다.

우리 나라의 산기슭과 마을 근처에는 쥐똥나무, 잎이 반짝이는 광나무, 꽃향기 좋은 찔레꽃, 꽃은 보잘것없지만 열매가 붉게 익는 산딸기 등이 있다. 또한 산 속에는 들장미의 일종인 흰 꽃이 피는 흰인가목과 잎이 고무나무를 닮은 흰만병초가 핀다.

산꼭대기 가까이에는 꽃개회나무, 붉은 인가목이 피고 싸리 종류는 산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나무를 타고 오르는 노랑꽃의 등칡이 신기하다.

큰꽃으아리의 흰꽃은 대표적 여름꽃이다.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마을 근처나 공원 또는 길가에 심어 놓은 무궁화인데, 요즘은 무궁화의 많은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초본 식물로는 연두빛 강아지풀에서 금강초롱에 이르기까지 종류나 빛깔이 다양하다.

흔히 들에 피는 것으로는 개울가에 푸른 꽃의 닭의장풀, 흰개여귀, 백선분홍자줏빛메꽃, 노란 달맞이꽃, 붉은 자줏빛 꿀풀의 꽃들을 볼 수 있다.

또 산기슭 초원 또는 숲 사이에는 노란 꽃잎의 원추리, 자주 보라의 꽃창포, 붉은 참나리, 황등색 범부채, 붉은 패랭이꽃, 연분홍 술패랭이꽃, 마타리, 하늘색의 잔디, 도라지 등의 꽃이 핀다.

깊은 숲의 어두운 곳에는 흰 수정난풀, 햇빛이 조금 드는 곳에서는 흰 눈빛승마, 솟대승마꽃이 핀다. 특히, 여름 내내 피어나는 봉선화는 처녀들의 손톱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었고, 저녁에 피어나는 분꽃을 보고 아주머니들은 저녁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우리 민족과 살아오면서 아련한 정서를 만들어온 여름철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여름의 꽃나무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석류나무이다. 가는 가지 끝에 선명한 분홍색으로 핀 석류는 열매 또한 뛰어나다. 석류나무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많이 사랑하는 꽃으로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고 있어 많이 심는다.

해당화는 명사십리와 함께 여름 해수욕 시절에 어울린다. 모래 벌판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우리 민족은 여름이 되면 녹음을 찾았고, 느티나무·회화나무·팽나무 등의 그늘 아래는 늙은이·젊은이 등이 모두 모여서 여론이 집약되고 정보가 교환되는 장소였다.

집을 떠난 사람이 고향을 회상할 때에는 마을에 서 있는 크고 오래된 정자나무가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다. 녹음을 제공하는 수종에는 왕버들·감나무·은행나무·밤나무 등이 있다.

여름새로는 뜸부기·백로·뻐꾸기 등이 있다. <화하만필 花下漫筆>에는 뼈꾸기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지만 봄 산 또는 여름 산에서 듣는 것이 더욱 속마음을 트이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뜸북 뜸북 뜸부기 논에서 울고’ 라는 노래는 벼포기가 자라는 여름논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여름에는 파리·모기·사마귀·여치 등 곤충들의 가장 활동적인 시기로, 특히 숲 속의 나무들에 붙은 매미들의 울음 소리는 여름의 절정을 말해 준다. 또한, 캄캄한 여름밤에 들려오는 맹꽁이 소리와 불꽃놀이와 같은 반딧불은 하루 종일 농사일에 피곤한 몸을 위로해 주는 자연의 큰 잔치였다.

또한, 여름은 농사의 계절이다. 지난 해 가을이나 올 봄에 파종한 작물을 수확하고, 가을 작물을 파종하거나 이식하는 등 가장 바쁜 농번기가 여름이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모내기를 하는 것이 우리 농촌의 가장 큰 행사이다. 모내기를 마치고 한해의 풍년을 그리는 5월 단오절의 행사가 열린다.

모내기와 더불어 고구마 새순을 이식하고, 하지가 지나면 감자를 수확한다. 경지가 부족하고 인구가 많은 우리 나라에서는 경지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수확기가 되기 전에 감자밭에 콩을 간작(間作)한다. 하지가 지나면 보리나 밀을 수확하고 그 자리에 조를 심거나 가을 채소를 심는다.

이때에 논의 풀매기가 몇 차례 이루어지고 조밭의 솎아주기와 잡초 제거가 겹칠 때에는, 농가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쁜 계절이 된다. 한여름에는 새벽 별을 보며 논·밭에 나가 저녁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된다.

콩과 더불어 초여름에 파종하는 두류로는 팥·녹두가 있고, 조와 더불어 파종하는 잡곡으로는 옥수수·수수·메밀·귀리·피 등이 있다.

8월이 되면 뜨거운 햇살과 더불어 모든 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온통 들녘은 초록색으로 넘치게 된다. 이른 벼는 8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하며, 세벌김매기를 하고 네 번째 북돋우기를 한 조도 이삭이 피기 시작한다. 한여름 밭에서 자라는 채소로는 무와 배추가 으뜸이며, 마늘은 수확을 기다리고 고추는 빨갛게 익기 시작한다.

여름은 풍성한 과실로 식생활이 다채롭다. 초여름의 과실로는 딸기와 복숭아가 신선한 미각을 북돋우며, 한여름이 되면 참외와 수박, 토마토가 그를 대신한다. 참외와 수박이 끝날 무렵이면 포도가 영글어 가고 배·사과·감이 가을을 향해 성숙을 늦추지 않는다.

늦여름이 되면서 종종 찾아드는 태풍은 성숙기에 접어든 벼와 조, 여러 과수에 큰 피해를 준다. 이것을 이겨내면서 여름의 농사는 끝난다.

세시풍속

세시풍속에서의 여름은 음력 4월부터 6월까지를 일컫는다. 여름철의 명절로는 대개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 6월 유두를 들 수 있다. 초파일은 석가탄신일로서 본래 불가의 명절이었는데, 불교가 일반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민가의 명절로 바뀌었다.

이날은 절을 찾아가 재를 올리고 많은 등불을 켜서 석가 탄신을 기념하며, 술과 다과를 준비하여 먹고 즐겼다. 등롱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연등(燃燈), 연등한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을 관등(觀燈), 그날 저녁을 등석(燈夕)이라고 부른다.

그날은 온 거리와 집집마다 초파일등을 다는데, 뜰에 등간(燈竿)을 세우고 꼭대기를 꿩의 꼬리로 장식하며, 채색 비단으로 만든 호기(呼旗)라는 깃발을 매단다. 이 호기에 다시 줄을 매고 그 줄에 등을 달아맨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집에서는 깃대 꼭대기에 소나무 가지를 붙들어 매기도 한다.

가정에서는 자녀수대로 등을 매달며, 밝음을 길조로 여긴다. 등의 모양도 가지각색이어서 수박등·마늘등·참외등·오리등·일월등·칠성등·누각등·선인등(仙人燈) 등 그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등에는 ‘태평만세(太平萬歲)’·‘수복(壽福)’ 등의 글씨를 쓰거나 기마장군상(騎馬將軍像)·선인상(仙人像)을 그리기도 한다. 여기에 불교와 민간 신앙의 융합 양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또 종이로 화약을 싸서 줄에다 매어 솟구치게 하면 아래로 내려오는 불이 마치 비오는 듯하며, 종이 조각 몇 십 발을 붙여 펄펄 날리게 하면 용의 모습과 흡사하게도 된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줄에 매달아 바람에 흔들리게 하여 놀리기도 한다.

원래 연등은 기농(祈農)행사로서 고조선에 이어 신라 시대에도 동짓날이나 대보름에 행하여져 왔으며, 불교가 성행한 고려 시대에 이르러 초파일 행사로 굳어졌다. 그러다가 다시 조선 시대에 와서는 민간 명절 행사로 성격이 바뀐다.

불교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으면서도 일반 민가의 명절 행사로 확대된 연등을 연등회·연등놀이·관등놀이라고 부른다. 초파일 저녁이 되면 신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절에 찾아가거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관등을 즐긴다.

또한 신도들은 불덕(佛德)을 빌고 가호를 바라는 뜻에서 탑돌이를 한다. 탑돌이를 할 때에는 불교 음악으로 범종(梵鍾)·북·운판(雲板)·목어(木魚)의 사법악기(四法樂器)만 쓰였는데 그것도 대중화되어 삼현 육각(三弦六角: 삼현은 거문고·가야금·향비파, 육각은 장구·피리·해금 및 한 쌍의 태평소의 총칭)이 합쳐졌으며, <보렴 報念>과 <백팔정진가 百八精進歌> 등을 부르기도 한다.

5월 초닷새 단오는 여름을 대표하는 명절이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홀수를 양수(陽數)로 여겨 길조로 생각하였다. 특히 3월 3일(삼짇날), 5월 5일, 7월 7일(칠석) 등 월일이 홀수이면서 같은 숫자로 되는 날을 대개 명절로 정해 즐겨 왔다. 이는 음양 오행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데, 5월 초닷새는 그 중 양(陽)이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최대의 명절로 삼았다.

단오의 다른 명칭으로는 수리[戍衣]·천중절(天中節)·중오절(重五節)·단양(端陽)·수릿날 등이 있다. 수리는 고(高)·상(上)·신(神)을 뜻하는 옛말로 5월 초닷새는 신의 날, 곧 최고의 날이라는 뜻이다. 단오에는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데, 수리치떡·쑥떡 등이 제사상에 오른다.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으며 궁궁이풀을 머리에 꽂아 행운을 빌기도 한다. 한편 약한 사람이나 산모는 익모초(益母草)즙을 마셔 입맛을 돋우고 원기를 찾는다. 익모초는 글자 그대로 모체(母體)에 득을 주는 약초이다.

예로부터 선조들은 창포·궁궁이·쑥·수리치를 영험이 있는 식물로 여겼으며, 그 영험으로 벽사초복(辟邪招福)을 구하였다.

단군 신화에서 웅녀가 쑥과 마늘로 인간이 되고 소원을 성취하였다는 이야기처럼, 특히 쑥을 영험과 주력(呪力)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단오날 이른 아침에는 액을 물리치기 위해 쑥을 베어다가 다발로 묶어서 문 옆에 세워두기도 한다.

창포는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기도 하는데, 가운데에는 ‘수(壽)’자나 ‘복(福)’자를 새기고 끝에는 연지를 바른다. 연지의 붉은 색은 벽사의 색이며, 수복의 글자는 수명장수와 복을 준다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다.

단오 무렵이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므로 부채를 사용한다.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부채는 예로부터 왕이 하사하는 귀중품이었다. 이 무렵 공조(工曹)에서는 단오선(端午扇)을 만들어 궁중에 바치며, 왕은 그것을 재상이나 시종 및 각 궁에 소속된 하인들에게 나누어준다.

관상감(觀象監: 조선 시대에 천문·지리·기후 관측 등을 맡아보던 관청)에서는 주사(朱砂)로 단오부적을 찍어서 대궐에 올리며, 대궐에서는 그 부적을 붙여서 액을 막는다. 민가에는 대추나무시집보내기(또는 대추나무장가보내기) 풍속이 있다. 정월 대보름 과수시집보내기와 같은 형식으로,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대추의 풍성을 기원한다.

강릉에서는 단오날에 대관령 서낭신을 모셔다가 제사를 지내는 단오제가 성대하게 베풀어진다. 단오제는 단오 며칠 전부터 시작되어 당일이 되면 절정을 이루는데, 지금도 강릉뿐 아니라 충청도·경상도 사람들도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룬다.

단오제 기간에는 서낭제뿐만 아니라 각종 민속놀이·단오굿·가면극 등이 연희되고, 전국에서 모인 온갖 장사꾼들과 노름꾼들의 고성방가로 이른바 난장이 트인다.

6월에는 복(伏)과 유두(流頭)가 있지만 오랜 명절로는 6월 보름 유두를 꼽는다. 유두란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약자로 동쪽에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뜻이다. 신라 때부터 전해오는 유두는 글자 그대로 동류수에 머리를 감고 궂은 것을 털어버리는 불제일(祓除日)이다.

동류수에 머리를 감는 것은 동방이 청(靑)으로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특히, 부인네들은 약수를 찾아가서 머리를 감는데 부스럼을 앓지 않고 더위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유두 무렵에는 새로운 과실이 나기 시작하므로 수박·참외 등 과실과 국수·밀전병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는 유두천신이 있다. 또 약수터에서 ‘노구메’를 드리기도 한다. 노구란 놋으로 만든 작은 솥, 메는 밥으로 곧 밥을 지어올려 기원을 한다는 뜻이다.

여름철의 시절식은 밀음식과 채소류, 그리고 더위에 빼앗긴 원기를 돋우는 건강식이 주류를 이룬다. 초파일 명절에는 석남(石楠)잎을 넣어서 만든 증편이나 쑥무리를 해 먹는다.

화전·어채·미나리강회·파강회 등도 이 무렵 시절식으로 유명하다. 특히, 여름 화전은 찹쌀 가루에 장미꽃잎을 섞어 반죽해서 기름에 튀긴 장미화전이다. 기름에 튀긴다고 유전(油煎)이라고도 한다. 또 생선을 두껍고 넓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그것으로 쇠고기 소를 싸서 초장에 찍어먹는 어만두(魚饅頭)도 별식의 하나이다.

단오 명절에는 쑥떡·수리취떡을 해먹는다. 쑥잎이나 수리취잎을 멥쌀 가루 속에 짓이겨 넣고 녹색이 나도록 반죽하여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든다. 여름이 되면서 밀음식이 제 맛을 내기 시작한 때문에 이 무렵 밀전병이 등장한다. 밀전병은 단오뿐 아니라 유두 때에도 명절식으로 즐긴다.

유두날의 명절식으로 유두면·수단·건단·연병 등이 있다. 국수는 생일에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는데 유두면 역시 장수하고 더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수단은 찹쌀가루를 쪄서 단자처럼 만든 다음 꿀물에 넣어 먹는 것이며, 건단은 물에 넣지 않은 것이다.

연병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안반(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 위에 놓고 홍두깨로 문질러 납작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튀기거나 깨와 콩을 묻혀 꿀에 바른 것이다. 또 풍작을 기원하여 유두날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한다.

그러나 여름철의 대표적 시절식은 명절식 외에 무더위의 건강식인 복(伏)날의 개장국, 개장국을 못 하는 사람을 위한 삼계탕·민어탕, 그리고 증편·호박전·콩국을 꼽을 수 있다. 개장국은 흔히 보신탕으로 불리지만 원래 한방에서는 이것을 성질이 더운 것으로 보아 허약한 몸을 보하고 모든 중독이나 부스럼을 퇴치한다고 한다.

또 구족(狗足)은 산모의 젖을 많이 나게 하고 구담(狗膽)은 살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복날 국을 끓여서 땀을 흘리고 먹으면 이열치열의 효과가 있어 으뜸이라는 것이다.

또 6월은 애호박이 가장 단맛이 나는 때이며 민어가 가장 기름이 오를 때이다. 그래서 ‘민어에 애호박’이라는 말이 있다. 복날 애호박을 넣어서 민어 매운탕을 끓이는 것도 그 까닭이다.

더불어 호박전과 상추도 제맛을 즐길 때이다. 증편은 여름떡으로 즐겨 시식되고 냉콩국수도 여름을 대표하는 시절식이다. 막밀가루를 사용한 수제비도 민가에서 애용되었으며, 가지·오이 등의 채소류 및 과일화채도 여름의 미각을 더하여준다.

여름철에는 봄철만큼 놀이가 흔하지 않다. 우선 격한 놀이를 하기에는 기후가 적합하지 않으며 또한 농사일도 한창 바쁜 때이다. 명절놀이로 초파일의 관등놀이를 들 수 있는데, 오락성보다는 종교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고 볼 수 있다. 탑돌이도 마찬가지이다.

초파일에 탈춤을 하는 곳도 있다. <송파산대놀이>는 정월 대보름·초파일·추석에 크게 연희되었다. 여름철의 대표적 명절놀이는 무엇보다도 단오 때 즐기는 그네뛰기와 씨름이다. 그네뛰기는 대개 단오절을 중심으로 거행되며, 추석이나 정초 기타 명절에도 행하여졌다. 주로 여자들이 중심이 되지만, 간혹 청소년들이 끼기도 하였다.

그네를 한자어로는 추천(鞦韆)이라고 한다. 고려 고종대 최충헌(崔忠獻)·최이(崔怡) 부자는 가끔 궁전 뜰이나 자신의 정원에서 호화로운 추천희(鞦韆戱)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넷줄은 보통 새끼로 만들지만 색실이나 노를 꼬아 만들기도 한다. 흔히 마을 어귀 등에 서 있는 느티나무나 버드나무의 적당한 가지에 매어놓고,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나와서 뛰며 놀게 한다.

대개는 초파일을 전후하여 매어 놓고 단오절에 이르기까지 약 한 달 동안 계속되는데, 단오날에는 경연 대회를 여는 것이 보통이다.

승부는 높이 올라가는 것으로 결정되며, 그네가 앞으로 나가는 자리에 높이를 재는 장대를 세우거나 그 위에 방울을 매달아 뛰는 사람의 발이 방울을 차서 울리도록 하여 방울 소리의 도수로써 승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네는 단오가 지나면 거두거나 끈을 끊는 것이 상례이다.

그네는 중국의 한대(漢代)·당대(唐代)에 성행하였고, 이 무렵에 다른 잡희와 함께 한반도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 시대에는 궁중 내지 상류층에서 성대하게 해왔고, 조선 조에는 왕궁이나 상층 계급이 이를 멀리하고 일반 서민들이 주로 즐겼으며, 그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네가 주로 여성놀이라면 씨름은 남성을 위한 경기적 오락이며 가장 서민적인 놀이의 하나이다. 씨름은 단오절뿐 아니라 7월 백중이나 8월 한가위에도 많이 하였다.

씨름 방식은 샅바를 매고 한 쪽 무릎을 꿇어 서로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를 잡아 쥔 다음, 동시에 일어나서 힘과 손발의 기술을 발휘하여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허리를 쥐고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샅바를 잡는 것이 보통인데, 이를 바른씨름이라 하고 반대인 경우를 외씨름이라 한다. 어린이들이 하는 아기씨름에는 샅바를 쓰지 않는다. 경기의 기술로는 안걸이·배지기·둘러치기·무릎치기·꼭뒤잡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승부를 겨루어 우승자를 판막음[都結局]이라 하고 우승자에게는 황소를 상으로 주었으며, 상으로 받은 황소의 수로 그 실력이 평가되었다.

씨름은 경기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세계 여러 민족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동 경기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각저(角抵, 角觝)·각희(角戱)·각력(角力) 등으로 표현하였다. 경기 방법이 한국의 씨름과 흡사한 것으로는 몽고 민족의 씨름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씨름이 고려 시대에 원나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경기법의 씨름이 고려 시대에 들어왔을지라도, 그 이전 한반도에도 씨름이 있었던 것은 유명한 통구(通溝)의 무용총벽화(舞踊塚壁畫)에 보이는 고구려인의 씨름 장면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름철은 모를 내고 곡식이 한창 성장할 시기이므로 좀체로 한가할 틈이 없다. 명절은 바쁜 일손 중에서 하나의 마디로 힘을 돋우어 주는 활력소이다. 시간을 많이 내야 하는 놀이 쪽보다 시절식이 풍부한 것은, 그즈음 온갖 채소와 과실·어류 따위가 풍부한 데다 지친 몸을 보양하기 위한 지혜로 볼 수 있다.

봄철의 대표적인 명절이 설날과 대보름인 반면 여름에는 단오이다. 그러면서도 6월 보름 유두 명절을 통하여 성장에 대한 욕구의 극치를 드러내준다.

봄 명절에는 농사의 풍작을 기원, 예축하는 각종 행사와 놀이로 푸짐하였지만, 여름은 실제 농사가 한창이어서 고된 작업 시간을 짬낸 막간의 휴식답게 몇 가지로 즐길 뿐이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짭짤하다. 그네와 씨름은 땀을 빼고 머금는, 말하자면 이열치열의 놀이이다. 지친 원기는 다시 힘으로 회복한다는 원리를 생각하면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놀이에서 이렇게 힘을 강조하는 것은 곡식의 힘찬 성장과도 관련시켜 볼 수 있다.

예술작품에 나타난 여름

(1) 문학

정학유(丁學遊)가 지은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에는 여름의 계절적 변화와 절기, 그리고 농촌에서의 할 일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4월령에서는 “4월이라 ᄆᆡᆼ하 되니 립하 쇼만 졀긔로다 비 온 긋희 볏치 나니 일긔는 쳥화ᄒᆞ다 덥갈닙 퍼딜 적의 벅국새 ᄌᆞ로 울고 보리 이삭 ᄑᆡ야나니 굇고리 소ᄅᆡᄒᆞᆫ다 농ᄉᆞ도 ᄒᆞᆫ창이오 잠공도 방댱이라 남녀로쇼 골몰ᄒᆞ야 집의 이실 틈이 업셔 젹막ᄒᆞᆫ 대사립을 록음의 다닷도다……”라고 하여 신록이 어우러지는 여름의 경치와 함께 바야흐로 바빠지는 농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또, 5월령에서는 “5월이라 듕하되니 망죵 하지 졀긔로다 남풍은 ᄯᅢ 맛초아 ᄆᆡᆨ츄를 ᄌᆡ쵹ᄒᆞ니 보리밧 누른빗치 밤 ᄉᆡ이 나거고나……”라고 해서 보리가 익어 타작할 때가 됨을 그리고 있다. 또 6월령에서는 “6월이라 계하되니 쇼셔 대셔 졀긔로다 대우도 시ᄒᆡᆼᄒᆞ고 더위도 극심ᄒᆞ다 쵸목이 무셩ᄒᆞ니 ᄑᆞ리 모기 모혀 들고 평디에 물이 괴니 악머구리 소ᄅᆡ로다……”라고 하여 장마가 오는 것과 초목의 무성함, 각종 곤충의 극성을 망라하고 있다.

<농가월령가>에서 그려내고 있는 여름은 물론 농촌을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비교적 소상하게 계절을 그리고 있어서 계절의 표현을 이해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된다.

이 노래에 따르면 여름은 농사일이 가장 바쁜 계절이며 장마도 대비하여야 하는 한편, 누에도 쳐야 하는 계절이다. 그런가 하면 단오와 유두날이 있어 그네뛰기와 창포로 머리 감기의 풍습이 지켜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정적으로 여름을 나타내는 경우 즐겨 사용된 소재는 난초·모란·버들개지 등의 식물과 새·꾀꼬리·두견 등의 동물, 그리고 장마나 구름 같은 자연 현상이다. 그렇기는 하나 봄이나 가을에 비해서는 정서적 감흥이 적은 탓인지, 여름을 노래한 작품은 봄·가을을 노래한 작품들에 비해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위의 소재들을 활용한 이미지들이 환기하는 분위기는 여름의 풍성함, 그 풍성함에서 느끼는 싱그러움, 그리고 한창 자라나는 성장의 기쁨 같은 것이다. 또한 농사일이 고되어서 삶이 괴롭다든가 이법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연에 비해서 인생은 그렇지 못하다는 한계 의식이 앞섬으로써 비애의 정서가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비애의 정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이 민요의 경우이다. 함안 지방에서 채록된 간지타령 가운데 “녹음방초 성하시에 시내 버들이 푸르렀다 늘어지고 처진 버들 임의 고혼이 한심하다.”와 같은 구절은 늘어진 수양버들이 머리 푼 여인을 환기하는 예이고, “5월 난초 피었다고 저기 작설에 온갖 난초 만발하여 피어 있노라.”라든가 “6월 목단 꽃 중에는 화중왕꽃이 온갖 나비 날아와서 춤을 추노라.”는 여름꽃의 화려한 모습을 노래하는 예이다.

또한 같은 녹음방초의 경우라도 “녹음방초는 연년이 오는데 정든 님 소식은 돈절……”은 자연의 이법에 인간을 부정적으로 투영함으로써 비애의 정서를 환기하는 데 비해 “4·5·6월은 녹음방초가 더욱 좋을시고.”나 “봄은 가고 여름은 오는데 녹음방초 시절이라.”는 녹음의 싱그러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동물을 형상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청산은 울울하고 유수난 창창한데 버들가지 우는 새는 부모 찾아 저리 우나 자식 찾아 저리 우나 나의 수심 절로 난다.“가 부정적 정서를 담고 있다면 “수양창창 들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는 일상적이고 긍정적인 감각으로 여름을 대하고 있다.

계절적인 풍성함과 싱그러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긍정적인 태도와, 자연 현상에 자신을 부정적으로 투영시키는 태도, 이 두 가지 태도는 전국에 걸쳐 지역적 특색 없이 민요에 두루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생활 감각을 소박하게 반영하는 민요의 경우, 자연 현상에 대비된 개인적 정서가 가지는 비애의 정조를 담은 경우가 훨씬 많다. 세시풍속을 다룬 월령체의 경우에도 절기의 즐거움에 반하는 개인적 외로움이나 고독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사월이라 초파일은 석가모니 탄일이라 집집마다 등을 달고 기원에 발원을 하건마는 하늘을 봐야 별을 따제 임 없는 바야 소용 있나 오월이라 단오날은 추천하는 명절이라 녹의홍상 미인들은 임과 서로 뛰노는데 우리 님은 어디를 가고 추천가잔 말이 전혀 없나 유월이라 유두날은 박분청유에 짖으나 전병 쭐기쭐기나 맛도 좋다 임 없는 빈 방안에 혼자 먹기가 금창이 막혀 못 먹겠네.”는 안동 지방에서 채록된 것인데 전국에서 대동소이하게 불리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의 여름은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고 한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역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여름의 농사일에 대한 묘사는 힘들고 괴롭다는 표현이 대종을 이룬다. “유월 염천 불더위에 이 같이 지슨 밭을 어찌 매고 살아갈꼬……”와 같은 표현들은 농사의 괴로움을 토로한 민요로 전국에 걸쳐 분포한다.

어차피 해야 할 농사이기에 이를 체념하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할 필요에서 나온 노래도 있는데 “여름이 되면 일꾼을 얻어 논을 매노니 잘도 크네……”와 같은 표현이나 “아침 들 푸른 벌판 보기만 하여도 배가 불러……”와 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민요에서 드러나는 여름의 표현은 농사일에 대한 화제가 많다는 것과 개인적 정서로서는 비애나 고독을 노래한 것이 많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고전 문학에서 여름에 관한 표현을 볼 수 있는 것은 고려 때의 시가 <동동 動動>이다. 달거리 형식의 고형(古形)이라고 할 수 있는 <동동>에서는 여름의 계절감을 세시풍속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4월 아니 니저 아으 오실셔 곳고리새여 므슴다 녹사(錄事)니 녯나ᄅᆞᆯ 닛고신뎌……”는 꾀꼬리에서 환기되는 인간의 비애와 고독을 노래하였고, “5월 5일애 아으 수릿날 아ᄎᆞᆷ 약은 즈믄 ᄒᆡᆯ 장존(長存)ᄒᆞ샬 약이라 받ᄌᆞᆸ노이다” 나, “6월ㅅ 보로매 아으 별해 ᄇᆞ룐 빗다호라 도라보실 니믈 ○곰좃니노이다……”는 세시풍속에서 느끼는 사랑과 고독을 노래하고 있다.

민요에서 흔히 보는 농사일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인데, 이런 것을 바탕으로 고려 가요가 민요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 조의 시조에 오면 새나 꽃 또는 여름의 자연 현상에 대한 노래가 많이 나온다. “곳 지고 속닙 나니 녹음이 다 퍼졋다……”라든가 “잔화 다딘 후의 녹음이 기퍼간다 백일 고촌에 낫ᄃᆞᆰ의 소ᄅᆡ로다……”와 같은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시조에 나타난 여름의 중요한 특색은 농사일의 괴로움 같은 것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름의 경치 자체에서 오는 흥이라든가 아름다움을 묘사하거나 표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를 들 수 있는데, “강호에 녀름이 드니 초당에 일이 업다 유신(有信)ᄒᆞᆫ 강파(江波)ᄂᆞᆫ 보내ᄂᆞ니 ᄇᆞ람이로다 이 몸이 서늘ᄒᆡ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라고 노래함으로써 시조 작자층의 여름에 대한 관심이나 느낌이 노동과는 상관없는 한가로움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이다. 총 10수로 된 여름노래[夏詞]에서 “구즌 비 머저가고 시○믈이 ᄆᆞᆰ아 온다 ᄇᆡ떠라 ᄇᆡ떠라 낙ᄃᆡᄅᆞᆯ 두러메니 기픈 흥을 금(禁) 못ᄒᆞᆯ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至匊忩 至匊忩 於斯臥) 연강첩장(煙江疊嶂)은 뉘라셔 그려낸고……”라고 서두를 시작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여름의 강촌 생활을 흥이나 풍류의 경지에서 파악하고 있지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맹사성이나 윤선도 개인의 취향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시조라는 장르가 상층 사대부들의 문화였던 점과 관련이 있다. 노동과는 관계가 없는 생활이었기에 <어부사시사>가 어부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노동과는 무관한 흥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마의 모습이라든가 녹음이 무성한 모습, 그리고 모기 등 물것에 시달리는 괴로움과 부채를 사용해야 하는 더위 등의 풍물이 풍성하게 묘사되고 있다.

<어부사시사>는 여음구가 들어 있어서 시조의 형식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정격의 시조에서도 이런 것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시명(時明)에 ᄇᆞ린 몸이 노야(老野)와 벗이 되야 장하강촌(長夏江村)에 일마다 한가커니 노처(老妻)도 일업ᄉᆞ냥ᄒᆞ야 바둑판을 그리더라. ”와 같은 시조를 보면, 시조 향유층이 양반층이어서 여름을 그저 한가한 계절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가사도 시조와 같은 향유층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초기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름을 한가한 계절로 보고 있음은 시조와 비슷하다.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俛仰亭歌>는 “나모 새 ᄌᆞᄌᆞ지어 수음(樹陰)이 어린 적의 백척난간(百尺欄干)의 긴 조으름 내여 펴니 수면(睡眠) 양풍(凉風)이야 긋칠 줄 모르가……”라고 여름을 한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철(鄭澈)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은 “○ 디고 새닙 나니 녹음(綠陰)이 설렷ᄂᆞᆫᄃᆡ 나위(羅幃) 젹막ᄒᆞ고 슈막(繡幕)이 뷔여 잇다 부용(芙蓉)을 거더 노코 공쟉(孔雀)을 둘러 두니 ᄀᆞᆺ득 시ᄅᆞᆷ한ᄃᆡ 날은 엇디 기돗던고……”라고 하여 한가롭고 긴 여름날의 고독을 형상하고 있다.

남도진(南道振)의 작으로 알려진 <낙은별곡 樂隱別曲>도 “삼복(三伏)의 열(熱)ᄒᆞ거든 ᄇᆡᆨ우션(白羽扇) 놉히 들고 풍녕(風影)의 지혀 누어 긴 ᄃᆞ리 펴 이시니 안한(安閑)ᄒᆞᆫ 이 거동을 뉘라셔 ᄀᆞᆯ올소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계층의 인식은 한아(閑雅)의 정취를 추구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여름을 그런 계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후기의 가사로 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물론, 가사 가운데에서도 앞서 살펴본 <농가월령가> 같은 것은 농사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다른 사대부들의 가사와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고, 사대부의 가사라 해도 안조원(安肇源)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만언사 萬言詞>같이 유배 생활을 노래한 경우 “남방염천 찌는 날에 빠지 못한 누비바지 땀이 배고 땀이 올라 굴둑 막은 덕석인가 덥고 검기 다 바리고 내암새를 어이하리……”와 같은 표현은 전기 가사에서는 볼 수 없던 양상이다.

그러나 대체로 생활적이기보다는 풍류적인 장르인 가사에서는 여름의 정취를 노래하고 묘사한 것이 주류를 이루었고, 생활에서 오는 여름철의 애환은 시적 대상이 되기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생활과는 유리된 사대부층의 미의식과 관련을 지어볼 수 있다.

한시에서도 여름을 노래한 것은 봄이나 가을을 노래한 것에 비해서 수가 적다. 그리고 내용이나 표현도 국문 문학의 그것에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고려 때의 이규보(李奎報)가 쓴 <하일즉사 夏日卽事>라는 시는 “대자리 홑적삼에 시원한 마루 꾀꼬리 울어대서 꿈을 깨우다 벤 잎에 가려진 꽃 늦도록 남고 열 구름 새는 햇살 빗속에 밝아라(輕衫小簟臥風檽 夢斷啼鶯三兩聲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明).”라고 하여 여름 그늘에서 느끼는 시원함을 무성한 나뭇잎과 꾀꼬리의 울음에 엮어 표현하고 있어, 삶의 고달픔과는 거리가 먼 정서를 보여준다.

조선 후기의 이광의(李匡誼)의 <고열 苦熱>이라는 시는 혹독한 더위를 노래한 것인데 “지리한 비 개고 나서 상쾌하더니 끓는 더위 비 생각 다시 나누나 시원하고 상쾌함 마음에 있고 비 내리고 날 갬에 상관 있으랴(雨濕要晴晴苦熱 熱如炎處雨還思 但念心在淸凉地 明雨今晴豈足知). ”라고 함으로써 여름의 날씨조차도 마음의 탓, 즉 수심의 문제로 옮겨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조선 말기 김정희(金正喜)의 <취우 驟雨>라는 시도 “훗훗한 바람결에 나뭇잎 나풀대고 먹장구름 지나가며 소낙비 퍼부려네 새파란 청개구리 어미 무덤 떠내린다 파초잎 위 뛰어올라 요란하게 울어대오(樹樹薰風葉欲嚌 正濃黑雨數峰西 小蛙一種靑於艾 跳上蕉梢效鵲啼).”라고 표현함으로써 소나기가 삶의 문제와는 무관한 한 폭의 서경인 것으로 머물게 하고 있다.

이처럼 실생활과는 거리를 가진 시 세계를 지니고 있던 모습은 풍속을 노래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김석구(金錫龜)의 <유두 流頭>라는 시는 “술병을 차고서 들로 나왔으니 오늘은 유두가절이라 소나무 그늘 아래 저물도록 누웠나니 맑은 바람 가을처럼 서늘하여라(提壺來郭外 佳節是流頭 閑臥松陰夕 淸風不讓秋).”라고 노래함으로써 전통적인 민속의 유두날 보내기와는 거리가 먼 시세계를 보인다. 이런 것도 한시의 특이성이다.

현대 시에 와서도 여름의 전형적인 소재나 그 이미지들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여름의 녹음이나 아침의 싱그러움이 인생의 젊음과 연관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많아진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노천명(盧天命)의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든가 ‘푸른 5월’ 같은 표현이 즐겨 사용되는 것도 이와 같은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현대 소설에서 더욱 심화되는데, 여름이 노출의 계절인 데에서 오는 야성적인 적극성이 에로스의 상상력을 촉발시킨 예를 많이 보게 된다. 고전에서는 비교적 은밀하게 감추어지던 이런 부분이 상당히 대담해진 것을 여름 묘사의 현대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효석(李孝石)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여름날 밤의 물방앗간의 정사는, 허생원의 기억 속에 박혀 있는 사건이면서 그의 잠재 의식으로 남아 대단원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비석(鄭飛石)의 <성황당>도 역시 여름을 배경으로 하여 소설의 계기를 마련한 예이다.

여름이 가져오는 또 하나의 변화는 가뭄과 홍수라는 재난이다. 이러한 재난의 문제가 고전 작품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는 데 비해 현대에 오면 소설의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최학송(崔鶴松)의 <큰물 진 뒤>는 여름의 홍수를 주요 동기로 하여 삶에 충격을 주고 시련을 주는 자연의 재난과, 그래서 얼크러지는 인간 관계를 보여 준다.

이 밖에 박화성(朴花城)의 <한귀>나 허윤석(許允碩)의 <유두 流頭>는 가뭄이라는 재난에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현대에 와서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반드시 거쳐야 할 시련의 상징으로 형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젊음과 싱싱함을 상징하는 초록빛을 권태의 빛깔로 바라보는 참신한 감각의 수필이 이상(李箱)에 의해 씌어진다.

<권태 倦怠>라는 제목의 이 수필은 더위 속의 고요한 농촌 풍경과 그 속에서 할 일이 없는 어린이들, 그리고 무진장으로 깔려 있는 초록빛을 보면서 어찌할 길이 없는 권태를 표현하고 있다. 고전 문학이 여름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집착하였다면 현대 문학은 이미지를 다양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미술

미술 작품에서는 여름을 소재로 한 작품과 여름의 농사일을 그린 작품, 그리고 여름에 쓰게 되는 도구인 부채를 이용해서 그린 그림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그림들 가운데 부채에 그린 그림은 그 자체가 미술의 한 양식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형식이나 양식에 있어서 다양하고 풍성하다.

조선 시대 이인문(李寅文)의 <송계한담도 松溪閑談圖> 같은 것은 부채 그림의 한 예가 된다. 여름의 풍속을 그린 것으로는 김홍도(金弘道)의 풍속화 가운데 개울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지나가는 선비가 곁눈질로 바라보는 해학적인 그림이 있다.

또 여름철 문이 다 열린 초당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단원도 檀園圖>가 유명하고, 그 밖에 산수화로는 정선(鄭敾)의 <하경산수도>나 김두량(金斗樑)의 <하경산수도 夏景山水圖>가 알려져 있다. 산·구름·강이 주된 구도를 이루고 여기에 도롱이를 입은 사람이나 한가해 보이는 행인을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 밖에 파초를 그려 여름을 시원하게 표현한 이수민(李垂民)의 <하일주연도>라든가 메뚜기·베짱이 등의 곤충들을 그린 이방운(李昉運)의 <하경산수도 夏景山水圖>도 알려져 있다.

그리고 민화에는 여름을 상징하는 것으로 창포나 모란이 주로 등장하였다. 또한 낚시하는 모습이나 농사일을 하는 광경을 그린 민화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3) 음악

여름이 작품의 동기가 된 노래로는 농사일에 관련된 노동요들이 풍성하게 있다. 보리 타작을 위한 노래인 <타작 노래>나 이것이 음악적으로 발전한 형태인 <옹헤야>, 그리고 <모내기 소리>나 <김매기 소리>들은 모두 여름의 노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여름의 농사일과 관계된 것일 뿐, 여름을 소재로 하였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여름을 소재로 해서 부른 노래는 가을이나 봄 노래보다는 많지 않은 편인데, 이는 정서적인 자극이 적은 계절적인 속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기 지방에서 부르는 휘몰이잡가 가운데 “육칠월 흐린 날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곰뱅이 물고 잠뱅이 입고 낫갈아 차고 큰 가래 메고 호미 들고 채쭉 들고 수수땅잎 뚝뚝 제쳐 질끈 동이고 검은 암소 고삐를……”로 계속되는 노래가 있는데, 달리 특별한 제목이 없이 그냥 노래의 처음을 따서 <육칠월 흐린 날>이라고 부른다. 여름을 노래한 것이 흔치 않은 가운데 매우 귀한 자료가 된다.

한편, 단가로 불리기도 하고 가사 작품으로 치기도 하는 <사시풍경가>를 보면 다른 계절에 관한 부분과는 달리 여름의 묘사가 극히 보잘것없다. “황앵은 환우하며 화초간에 왕래하고 양류는 청청하여 바람을 못이기어 유서를 흩날린다·연 캐는 아희들아 창랑수 맑은 곳에 부용일지 꺾어내니 일진 청풍홍백이 분명하다/녹파를 의지하여 옥배를 어루만져 연엽주 마신 뒤에 채련곡 읊으면서 귀거래사 생각하니 전원이 어디메뇨……”라고 되어 있어 다른 계절에 비해 간략하다.

여름을 제대로 노래하지 못해서 계절의 감각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면, 다른 계절에 비해 예술적 형상화에 그다지 적합한 계절이 못 된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음악이 들어온 뒤에는 시인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 많은데, 김말봉(金末峰)의 시에 금수현이 곡을 붙인 <그네>가 많이 불린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분위기를 상징하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여름은 일을 하는 계절로 생각되었다. 농경 생활이 중심이었으므로 이와 같은 생각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는 속담은 그런 생각의 단적인 표현이다. 또 여름에는 아무래도 더워서 노출이 심해지므로 ‘여름 살은 풋살’이라고 해서 계절적인 특징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름에는 파리·모기·빈대 등의 물것이 많아 지내기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며, 반면에 날씨가 더워서 집안에 갖출 것이 많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여름 거지 겨울 부자 안 부럽다.’라고도 한다. 그러나 여름을 넘기면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가뭄과 홍수라는 천재지변이며 이것만 없으면 가을의 풍년을 기약할 수 있다고 하여 시련의 시기로 생각하기도 하며, 가뭄이 들면 하늘의 노염을 풀고자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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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주요조경식물(造景植物)의 상징성에 관한 연구」(이외희,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6)
집필자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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