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만 8,995㎡. 고달사는 일명 고달원(高達院)이라 부르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인 764년(경덕왕 23)에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남아 있는 유적·유물을 통하여 신라 하대에 창건되고, 고려시대에 이르러 큰 도량으로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고달사지에는 중심 법당자리에 4각형의 큼직한 고달사지 석조대좌(보물, 1963년 지정)가 있어 이 불좌대를 중심으로 남향한 넓은 도량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뒤편으로는 낮은 산 능선에 고달사지부도(국보, 1962년 지정)가 있고, 그 밑으로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보물, 1963년 지정)이 있으며 그 남쪽의 법당지 뒤편에는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가 위치해 있는데, 이들 석조물은 모두 고려 초기의 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종대사혜진탑비의 비신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 비문에 의하면 원종대사는 869년(경문왕 9)에 출생하여 958년(광종 9) 8월에 90세로 입적한 당시의 고승이었다. 그의 혜진탑은 977년(경종 2)에 건조하였으며, 이 탑비는 2년 앞선 975년에 건립하였다.
따라서 이 석조물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석조물의 건조연대의 추정은 물론 고달사지의 연혁도 짐작할 수 있다. 산 능선에 위치한 고달사지부도가 누구의 부도인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정제된 조형과 세련된 조각 수법에서 장중함을 엿볼 수 있다.
신라 하대 이래로 나타나는 중대석의 귀두부와 운룡문, 연화문이나 탑신부의 조각 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우수한 작품이며, 신라 말 고려 초에는 이미 큰 도량으로 번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불좌는 물론 주변 금당유구에서 볼 수 있는 주춧돌들이 모두 원좌의 기둥굄이 정연함을 볼 때, 역시 10세기를 전후한 때의 거대한 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