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포(素圃). 아버지는 이조참판 오재익(吳在翼)이며,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정채(挺采)의 딸이다.
1849년(헌종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承政院假注書)가 되었고, 정자(正字)를 거쳐 1852년(철종 3) 전적이 되었다. 이어 이조정랑·지평·봉화현감 등을 지내고, 1861년에 헌납이 되었다. 부모상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1870년(고종 7)에 다시 등용되어 집의가 되었다.
사간이 되어 「진시폐소(陳時弊疏)」·「청저양무재소(請儲養武材疏)」 등을 올려 시폐의 시정, 제도의 개혁 등을 건의하여 시행하게 하였으며, 최익현(崔益鉉) 등을 공박한 권정호(權鼎鎬)·백규섭(白奎燮)을 탄핵하여 삭직하게 하였다.
1882년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었는데, 군란이 일어나자 사직소를 올렸으나 그 이듬 해 공조참판이 되었다. 성품이 청빈하였으며, 천인이기(天人理氣) 등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소포유고(素圃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