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익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필보(弼甫)
월강(月岡), 묵재(默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4년(선조 7)
사망 연도
1618년(광해군 10)
본관
동복(同福,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주요 관직
검열|감찰|전적(典籍)|병조좌랑|정언(正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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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전적, 병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필보(弼甫), 호는 월강(月岡) 혹은 묵재(默齋). 상서원직장(常瑞院直長) 오극군(吳克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옹원직장(司饔院直長) 오세현(吳世賢)이고, 아버지는 우참찬 오억령(吳億齡)이다.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홍일운(洪日雲)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예문관봉교(禮文館奉敎)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 실록의 재간행에 참여하였다. 그뒤 검열·대교(待敎)·주서(注書)·감찰·전적(典籍) 등을 거쳐 병조좌랑·정언(正言)·수찬(修撰) 등을 지냈다.

1609년(광해군 1) 병조좌랑 겸 지제교(兵曹佐郞兼知製敎)로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검상(檢詳)·사인(舍人)·승지 등을 역임하고,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글씨에 능하여 함흥의 환조정릉신도비(桓祖定陵神道碑) 비문을 썼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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