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기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종 때의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음애(陰崖) 이자(李耔, 1480∼1533)가 살았던 곳으로 전한다.
원래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된 ㄷ자형의 본채 앞쪽에 一자형의 행랑채가 있어 튼ㅁ자형 배치였던 것으로 보이나 행랑채는 소실되고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본채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중앙에는 3칸 대청과 툇마루가 딸린 1칸 건넌방과 부엌이 있고, 우측 날개 부분에는 대청에 연접하여 뒤쪽에 툇마루가 있는 2칸 안방과 1칸 반씩의 부엌, 나뭇간이 있다.
본채의 좌측 날개 부분은 사랑으로 건넌방 부엌에 연접하여, 1칸 반의 청방(廳房)과 전면에 툇마루가 딸린 2칸 사랑방, 1칸 반의 부엌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후기 경기지역 주택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청방은 사당(祠堂)을 따로 짓지 않고 건물의 일부를 제사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다른 건물과 달리 이 곳에만 가칠단청이 되어 있어 신성한 공간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랑방 정면의 기둥으로, 방주(方柱)의 네 모서리를 훑어내어 팔각으로 만든 것이다.
본채는 민도리집으로, 좌우 날개 부분의 지붕 형태가 약간 다르다. 좌측의 사랑방 부분은 팔작지붕의 형태이며, 우측 나뭇간 부분은 맞배지붕인데 박공면과 보의 일부에 불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나뭇간 옆으로 행랑채 등이 인접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는 중앙 대청 부분에서 평오량가(平五樑架)이고, 좌측 날개채는 전퇴(前退)가 있는 반오량가(半五樑架), 우측 날개 부분은 삼량가(三樑架)의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