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재집(容齋集)』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행(李荇, 1478~1534)의 시문집이다. 본집 10권, 외집 1권 합 7책의 목판본이다. 1,852수나 되는 시와 66편의 부(賦) 및 77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1권에서 8권까지는 시집이며, 9권과 10권은 문집이다. 각종 관조(官曹) 계회(契會)의 축하 목적으로 지어진 작품들이 많으며,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면서 지은 작품이 수록된 「차황화시(次皇華詩)」와 「동사록(東槎錄)」 등에서 문병을 잡은 관각 문인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용재집(容齋集)』은 본집 10권, 외집 1권 합 7책의 목판본이다.
이안눌의 중간본에는 1,852수나 되는 시와 66편의 부(賦) 및 77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1권에서 8권까지는 시집으로 구성되어 있고, 9권과 10권은 문집이다.
『용재집』의 첫머리에 주세붕(周世鵬)이 쓴 행장과 목록을 실었으며, 권말에 이안눌의 중간 경위를 밝힌 발문이 실려 있다.
1, 2, 3권은 시체별로 구성되어 있다. 연대 고증이 가능한 작품들을 근거로 추측하건대 여기에 수록된 작품은 유배 시절을 전후하여 벼슬살이 시기에 지어진 것들인 듯하다. 벗들과 서로 창수(唱酬)한 시 외에는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벼슬아치를 전별하거나 각 관조(官曹)의 계회도(契會圖)에 지은 것들이 많으며, 그 내용 또한 시재(詩才)를 겨루는 한가한 수작(酬酌)이나 관직 생활에서의 풍류, 그리고 의례적인 인사말 등이 주조를 이루어 전형적인 관각 문인으로서의 특징적 면모를 보여준다. 2권 말미는 만사(挽詞)로 꾸며져 있는데, 역시 왕가(王家)와 고관대작에 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4권부터 8권까지는 전적으로 집록류가 실려 있다. 4권에는 「조천록(朝天錄)」, 「천마록(天磨錄)」, 「잠두록(蠶頭錄)」, 「후잠두록(後蠶頭錄)」이 실려 있다. 5권에는 「적거록(謫居錄)」과 「남천록(南遷錄)」이 실려 있다. 「적거록」은 1504년(연산군 10)에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시호 추숭(追崇)을 반대한 것이 죄가 되어 충주(忠州)로 귀양 갈 때와 귀양 가서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남천록」은 이 해 정월, 관노로 신분이 격하되어 함안(咸安)으로 귀양살이하는 장소를 옮긴 뒤에 지은 시들을 모은 것으로, 험악한 시국의 기상 탓인지 부쩍 체념의 정조(情調)가 눈에 띈다. 「이소경발(離騷經跋)」에서는 굴원에 자신을 투사(投射)하였다. 6권에는 1506년(연산군 12)에 거제도(巨濟島) 고절령(高節嶺) 아래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관노의 신분으로 양을 치는 노역을 하면서 지은 시문을 모은 「해도록(海島錄)」이 실려 있다. 7권에는 6권에 이어서 먼저 「해도록」이 실리고, 다음으로 「남유록(南遊錄)」, 「창택록(滄澤錄)」, 「영남록(嶺南錄)」이 차례로 실려 있다. 8권은 「차황화시(次皇華詩)」, 「동사록(東槎錄)」, 「화주문공남악창수집(和朱文公南岳唱酬集)」이 실려 있다.
9권에는 임금이 대소 신료(臣僚)에게 술을 경계한다는 내용의 계주문(戒酒文)을 위시하여 교서(敎書), 발(跋), 설(說), 서(序), 송서(送序), 전(箋), 책문(冊文), 애사(哀辭), 제문(祭文), 명(銘), 묘지(墓誌) 등이 한두 편 내지 서너 편씩 실려 있다. 10권에는 말미에 첨부된 「화남악창수집발(和南岳唱酬集跋)」과 「동사집후서(東槎集後序)」를 제외하면 전부 묘도 문자(墓道文字)로 꾸며져 있다.
외집(外集)에는 모두 부(賦)만 실려 있는데, 주로 고사를 읊은, 과문투(科文套)에 가까운 것이 많다. 『화주문공남악창수집(和朱文公南嶽唱酬集)』이라는 표제를 단 별집은 1554년(명종 9)개성에서 간행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모두 없어져서 1612년(광해군 4) 이안눌이 금산에서 중간하였다. 본집을 중간할 때에 본집의 시집 끝부분에 수록하였다.
이행은 관각 문인 본연의 임무대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거나 중국 사신을 접반하면서 시적 재능을 드러냈다. 한편 남곤(南袞), 심정(沈貞)과 함께 『속동문선(續東文選)』을 편찬하는 등 당대 문풍(文風)의 진작에도 관심을 보였다. 현존하는 그의 시문집을 보면, 지방관으로 나가는 벼슬아치를 전별하거나 각종 관조(官曹) 계회(契會)의 축하 목적으로 지어진 작품들이 많으며,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면서 지은 작품이 수록된 「차황화시」와 「동사록」 등에서 문병을 잡은 관각 문인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이행은 성종 때에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의 보완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주관하여 완성하고 나서 쓴 「신증동국여지승람서」, 명나라 사신과 주고받은 시문을 모아 책을 만들고 나서 쓴 「황화집부록서(皇華集附錄序)」, 『동문선』, 『삼강행실도』 등의 속편을 찬진(纂進)할 때 쓴 글인 「진속동문선전(進續東文選箋)」 · 「진속삼강행실도전(進續三綱行實圖箋)」 등을 통하여 그의 문화적인 업적을 살펴볼 수 있다.
당대에서부터 뛰어나다는 평을 얻은 이행의 시는 특히 유배 생활 동안 지은 것이 참신한 표현과 새로운 발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의 화려하고 들뜬 기풍을 없애고 표현의 격조를 높였다 하여, 그를 박은(朴誾)과 함께 해동의 강서파(江西派)로 부른다. 또한, 그는 문(文)에도 뛰어나 정연한 논리 속에서 삶의 깊은 내면을 보여 주고 있다. 대표적인 글 「안정기(安亭記)」에는 그의 자연관 ·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다.
『용재집』은 1973년 아세아문화사(亞世亞文化社)에서 영인하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 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별집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