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선 ()

영천 송곡서원 정면
영천 송곡서원 정면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태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자계(子繼)
태재(泰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388년(우왕 14)
사망 연도
1443년(세종 25)
본관
서산(瑞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태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 할아버지는 관찰사 유후(柳厚)이고, 아버지는 유기(柳沂)이다. 어머니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이종덕(李種德)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05년(태종 5) 국자사마시(國子司馬試)에 합격하고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1409년 아버지가 민무구(閔無咎)의 옥사에 관련된 것으로 연좌되어, 청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영천에 이배되었다.

1415년 풀려나 원주에서 지내던 중, 참소로 인하여 다시 영천에 유배되었으나 1427년(세종 9)에 풀려났다. 유배생활 중의 학행이 높이 드러나 유일(遺逸: 과거를 거치지않고 높은 관직에 천거될 수 있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선비)로 추천되어 주부(主簿)에 천거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2세 무렵부터 변계량(卞季良)·권근(權近) 등에게 수학하여 일찍부터 문명이 높았다. 특히 유배생활 중에는 유배지 영천의 명승지에 ‘태재(泰齋)’라는 서재를 지었다. 그리고 당시에 유배 또는 은둔생활을 하던 이안유(李安柔)·조상치(曺尙治) 등 문사들과 학문적인 교분을 맺고, 주변의 자제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여, 이보흠(李甫欽) 등의 문하생을 배출하였다.

즉, 정몽주(鄭夢周)·권근·변계량을 잇는 영남성리학의 학통을 후대에 계승, 발전시키는 구실을 담당한 것이다. 원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거정(徐居正)·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강효문(康孝文) 등 문하생을 길러내었으며, 특히 시학(詩學)에 뛰어났다. 경현원(景賢院)과 영천 송곡서원(松谷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태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해동잡록(海東雜錄)』
『태재집(泰齋集)』
『필원잡기(筆苑雜記)』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