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때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이암(李碞)의 아들이다.
원송수(元松壽)의 추천으로 지신사(知申事)가 된 뒤, 1356년에는 이부낭중(吏部郎中)의 직에 있으면서 왕으로부터, “네가 전선(銓選: 인사행정)에 참가하였으니 대간으로 직책을 다하지 못한 자는 내치고, 현재(賢才)로 유일(遺逸: 유능한 자가 등용되지않아 세상에 나타나지 않음)된 자는 이를 올리고, 부모의 상을 당하여 복제를 마친 자는 또한 반드시 이를 탁용(擢用)하라.”라는 말을 들었다.
밀직제학으로 죽으니 왕이 심히 애도하고 후하게 부의를 하사하였으며, 관례상 추밀(樞密)은 시호를 내리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문경(文敬)이라고 특별히 시호를 내렸다.
죽을 때의 관직이 『고려사(高麗史)』세가에는 밀직제학으로 되어 있고, 예지(禮志)에는 밀직부사로 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전자는 추증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