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상(仲尙), 호는 남촌(南村). 이간(李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계종(李季宗)이다. 아버지는 이세순(李世純)이며, 어머니는 채년(蔡年)의 딸이다. 허엽(許曄)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제수되고 이어서 박사에 승진되었다.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우의정 윤개(尹漑)의 추천으로 1557년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61년 예조정랑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세자시강원사서로서 세자교육에 공헌하였으며, 1563년 홍문관부수찬으로서 언론강화에 힘썼다. 당시 정권을 농단하고 있던 이량(李樑)을 탄핵함에 앞장서 마침내 그 일당을 축출하였다.
그 뒤 지평·공조정랑·장령·교리를 역임하고 1590년(선조 23) 황주목사로 있다가 개체(改遞)될 때에 백성들이 선정을 기려 유임을 탄원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후인 1594년 예조참의로 기용되고 1599년 강화부사를 거쳐, 1603년 한성부우윤, 그 이듬해에는 경기감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