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응명(應明). 이숭수(李崇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동판관 이성무(李成茂)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예신(李禮臣)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全州崔氏)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 · 진사시에 급제하고, 1528년 형 이몽윤(李夢尹)과 함께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제수되었다. 이어서 승정원주서 · 사간원정언을 역임하고, 1539년 국왕의 특명으로 경상도어사가 되어 민정을 살피고 돌아왔다.
그 뒤 명종이 즉위하자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로 제수되었고, 이어서 대사간으로서 학문에 입각한 도학정치를 제창하였다. 1547년(명종 2)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도민의 진휼을 위하여 진력하였고, 이어서 예조참의 · 병조참지 · 대사간을 역임하고 1550년 도승지에 올랐다.
이듬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조식(曺植) 등 재야사림을 천거하였고, 이어서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그 뒤 대사간 · 병조참판 · 경기감사 · 예조참판 · 도승지를 역임하고, 1560년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어서 대사헌 · 형조판서를 지냈는데, 형조판서로서 형률을 잘못 처리하였다고 하여 한 때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서용되어 동지중추부사 · 한성부판윤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성품이 온유하였고 형제 사이에 우의가 돈독하였다. 시호는 정헌(定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