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화봉(華封), 호는 매헌(梅軒). 할아버지는 이응종(李應鐘)이고, 아버지는 찰방 이극부(李克扶)이다.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梁氏)로 별제(別提) 양홍도(梁弘度)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가학을 전수하였고, 18세 때 향시(鄕試) 양장(兩場)에 합격하여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1623년(인조 1) 양친의 상을 연이어 당한 뒤 과업(科業)을 포기하였으나, 1635년(인조 13) 형의 권유로 응시,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그 해 승문원교례(承文院敎隷)에 임명되고, 1637년 주서가 되었으며, 1638년 병으로 사직하였다. 1639년 전적으로 다시 임명되고 연서찰방(延曙察訪)을 지냈으며, 1642년 병조좌랑, 1648년 병조정랑·사헌부지평을 역임하고, 동차하정사(冬差賀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49년 청도군수로 재직하면서 공평하고 청렴한 생활로 많은 선정을 쌓았으나 화재사건으로 파직되어 향리로 돌아갔다. 그 뒤 여러 번 출사를 요청받았지만 모두 물리치고 독서와 시를 즐기며 지냈다. 저서로는 『매헌유고(梅軒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