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광양군(廣陽君) 이세좌(李世佐)의 5대손이다.
숙종 때 부사를 지냈으며, 무신란(戊申亂: 李麟佐의 亂)이 일어났을 때 운량도감(運糧都監)이 되어, 두 아들 이자간(李自侃)·이여간(李汝侃)과 도모하여 양곡을 모아 군소(軍所)에 보냈고, 의사(義士)들과 더불어 운봉(雲峯)의 팔량치(八良峙)를 지킴으로써 난군이 넘지 못하게 하였다.
운봉의 천총(千摠)·정준교(鄭俊僑)와 함께 함양에 들어가, 난을 일으킨 최존서(崔存緖)·허격(許格)을 생포하여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