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6년에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평양성 성벽돌 명문에 그 이름이 보이는데, 이에 따르면 이장은 수도 평양성 5부의 하나인 내부(內部) 출신으로 상위사자(上位使者)의 관등과 공사의 책임자인 백두(百頭)의 관직을 갖고, 기축년(기축년) 3월 21일 외성 2리 구간의 축성을 감독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522년(양원왕 8)에 장안성을 쌓고 589년(평원왕 28)에 장안성으로 천도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축성을 시작한 연대인 기축년은 569년(평원왕 11)에 비정된다.
그러나 다른 평양성 성벽돌의 명문에는 589년(己酉年)에 외성의 축조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축년은 기유년의 잘못일 가능성도 있다. 이 명문이 새겨진 성벽돌은 현재 실물이 전해지지 않고,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에 그 석문(釋文)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