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숙희(叔喜). 이극견(李克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반(李攀)이고, 아버지는 이영부(李英符)이며, 어머니는 이효완(李孝完)의 딸이다. 장령(掌令) 이수경(李首慶)의 동생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1548년 검열이 되었다. 이듬해 정언·부수찬을 역임하고, 1550년에는 수찬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고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여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 헌납, 다음해 대사간을 거쳐, 1561년 예조참의·부제학에 제수되었다. 그뒤 1563년에는 이조참판을 지내고 이듬해 대사헌을 겸하는 등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당시 윤원형(尹元衡)의 소윤파가 권세를 마음대로 하자, 이를 내심 두려워한 명종은 이량(李樑)으로 하여금 이를 대적하게 하려고 이조판서 벼슬까지 주었으나 결국 1563년 이량은 강계로 귀양가고 간신들도 멀리 귀양갔다.
이때 그도 일당으로 몰려 파직되었으나 1565년 해배되어 부호군에 임명되었지만 그 이튿날 다시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그러나 명종 때에 청백리로 추앙받았다.